대한민국의 원자력 정책은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사고,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의 강력한 외부 충격과 반핵·탈핵 운동으로 대표되는 내부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약 60여 년간 '원자력 발전과 진흥'이라는 정책 기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2017년 5월 치러진 조기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그가 에너지 공약으로 내세웠던 '탈(脫)원전' 정책이 공식적 의제로 대두되고 정책결정에까지 이르는 급격한 정책변화를 겪게 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탈(脫)원전' 정책결정이 비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보고, 다중흐름모형(MSF)을 통해 그 주요 원인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체계적인 흐름 분석을 위해 대한민국 원자력 정책의 분수령적인 변화를 겪은 시점을 기준으로 1기(1986-2005.10), 2기(2005.11-2011.2), 3기(2011.3-2017.2), 4기(2017.3-2017.12)로 나누었고, 각 시기별로 '문제의 흐름, 정치의 흐름, 정책의 흐름'이 어떻게 존재해 왔고 결합하였는지 정책의 창을 여는 '정책선도가'의 역할과 활동에 중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였다.
분석결과 제1기에는 계속된 초점사건의 누적으로 형성된 강력한 문제의 흐름이 존재했으나 '원자력의 진흥과 발전'이라는 정책 기조에 동의하는 정치의 흐름, 정책의 흐름과는 결합을 이루지 못했다. 이로 인해 반핵세력이 중앙집권적인 정부 정책과 극심한 갈등을 빚어 방폐장 부지선정 정책은 19년 동안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표류하게 되었다. 제2기에는 1기부터 점진적으로 수정해 온 정부의 방폐장 유치지역에 대한 참여보장과 보상 제안이 지역사회에서 받아들여 지면서 주민투표라는 민주적 유치방식을 통해 2005년 경주가 최종 방폐장 후보지로 선정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반핵운동세력의 동력이 크게 상실되었고 문제의 흐름이 약해짐에 따라 정책의 창은 열리지 않았다. 정치의 흐름과 정책의 흐름이 1기와 마찬가지로 원자력 발전과 진흥이라는 기조를 유지한 것도 결합(coupling)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제3기에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상징적인 초점사건이 발생하여 과거 방폐장 반대 운동 때의 강도를 넘어서는 강력한 문제의 흐름 되살아남과 동시에 국회 내에서 야당을 중심으로 탈핵 관련 논의가 조직적으로 전개되는 등 이전과는 달리 정치적 흐름이 형성 되었다. 그러나 특정한 정책선도가가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원자력안전법」 이 제정되고,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보수우파정당(새누리당)이 연이어 승리하며 어렵게 열렸던 정책의 창이 닫히게 되었다. 4기는 달랐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의 신(新)정부 등장으로 강력한 정치적 흐름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개혁적인 정책집행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집권 초기에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한 '탈원전' 으로의 에너지전환을 공식의제화했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설치·운영해 '정책의 창'을 여는 정책선도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약 60여 년간 일관성 있는 기조를 유지해왔던 대한민국 원자력 정책이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탈원전' 결정으로 이어진 배경에 강력한 정치의 흐름과 대통령이라는 정책선도가의 역할이 중요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력한 정치적 흐름과 정책선도가의 주도 아래 대안의 흐름이 약한 상태에서 정책 결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정책적 불완전성을 지니고 있다는 한계점이 발견되었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서 본 연구에서 도출한 결과 및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탈(脫)원전 정책 결정은 정책대안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비합리적 의사결정이었다. 둘째, 정책대안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정책결정에 이를 수 있었던 주요 요인으로는 강력한 정치적 흐름과 정책선도가의 주도적 역할이 컸다. 셋째, 정책대안이 부족한 상황에서 결정된 정책은 정책적 불완전성을 갖는다. 따라서 성공적인 정책의 집행을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에너지환경에 맞는 정책대안을 충분히 재검토하여야 하며 더불어 구색 맞추기 식 공론화가 아닌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