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억압은 사회 안에서 구조화된 위계질서에 따라 정신과 육체 그리고 행동을 제한하는 포괄적인 형태로 확산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권력의 억압적인 힘은 오랜 역사 속에서 강제적이고 우월적인 지배체계를 거쳐 새로운 인식전환의 교류적·소통적인 공존체제를 향해 진보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의 삶을 통제하는 억압의 잔재로 남아 지배하고 있다.
패션은 권력과 억압의 메시지가 강하게 내포된 문화적 산물로 사회적 욕구가 반영된 커뮤니케이션 도구이자 가시화된 표상이며, 오늘날 글로벌적인 핵심 키워드로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본 연구는 우리의 삶을 지배해 온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는 권력과 억압의 시대적인 변화 양상과 이에 따른 특성 및 내적 의미를 규명함으로써 권력에 의한 억압의 힘을 독창적인 패션디자인으로 가시화하여 패션디자인 개발을 위한 시각자료를 제공하는데 그 목적과 의의를 둔다.
연구 내용 및 방법은 문헌연구와 사례연구를 병행하여 권력과 억압에 관련된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권력의 억압적 특성을 도출한 후, 연구의 분석틀로 활용하여 패션에 표현된 권력의 억압적 특성이 반영된 대표 스타일들을 패션전문 사이트를 통해 사례 분석하고, 이를 응용한 패션디자인 작품 8점을 개발·제작하였다.
본 연구의 문헌연구와 사례분석에 따른 작품제작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권력과 억압에 대한 이론 고찰을 통해 도출한 권력의 억압적 특성은 강제에 의한 억압, 우월에 의한 억압, 저항에 의한 억압, 소통에 의한 억압 등으로 구분된다.
강제에 의한 억압은 국가 및 사회의 법률, 형벌, 제도 안에서 절대권력을 가진 억압자가 피억압자의 육체에 가하는 폭력적인 억압으로 피억압자의 몸에 가학적·왜곡적인 형태로 강력한 권력의 힘과 억압을 나타낸다. 우월에 의한 억압은 사회의 우위에 위치한 남성중심의 억압자가 권력의 내면화를 통해 피억압자의 자발적인 복종을 유발하고, 권력의 힘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특권의식이 반영된 억압으로 억압자들의 몸에 과시적·규율적인 형태로 권위를 드러낸다. 저항에 의한 억압은 권력에 대한 피억압자의 저항의식이 반영된 권력의 반작용으로 정신과 육체에 동시에 나타나는 사회적 갈등 또는 집단적인 시위를 통해 기존 사회를 비판하는 풍자적·해체적인 형태로 억압의 불복종과 극복을 의미한다. 소통에 의한 억압은 오늘날 권력의 미래지향점으로 권력의 힘이 분산되어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공존하는 상호교류·생성·복합적인 형태로 다양한 개인의 정체성이 존중된다. 하지만 이 또한 권력의 진보된 전략으로 피억압자와 교류하는 유연한 방식으로 권력의 우월성을 내포한다.
패션 사례분석의 결과 권력의 억압적 특성은 가학적 왜곡형, 권위적 과시형, 풍자적 해체형, 다원적 교류형 등으로 구분된다.
가학적 왜곡형은 현대 패션에서 전통적인 억압에 따른 코르셋과 여성 속옷들이 성적인 측면으로 부각되어 페티시 룩, 란제리 룩, 시스루 룩, 바디컨셔스 룩 등으로 나타났고, 종교적인 측면의 이슬람의 베일, 히잡, 성직자의 복장 또는 신체절단과 같은 가학적인 고통들이 극단적인 그로테스크한 룩으로 표현되어 억압의 강제성, 가학성, 에로성, 공포성, 혐오성 등을 의미한다.
권위적 과시형은 현대 패션에서 억압자의 권위 또는 힘을 나타내는 과시형과 규율형으로 구분된다. 과시형은 궁중복식이나 시대적 양식이 반영된 컨셉으로 과장된 실루엣의 화려한 장식이 강조된 오뜨 꾸뜨르 룩, 럭셔리 룩, 페미닌 룩 등으로 나타났다. 규율형은 남성 권력과 관습적인 코드가 반영된 댄디 룩, 모던 룩, 타임리스 룩, 클래식 룩 등으로 표현되어 억압의 우월성, 과장성, 숭고성, 남성성, 획일성, 규율성 등을 의미한다.
풍자적 해체형은 기존 사회의 저항의식이 반영된 안티패션으로 현대 패션에서 젊은 층을 대변하는 스트릿 패션이 주를 이루며 해체·재구성 또는 성 경계가 모호하거나 서로 다른 조합을 통해 오버사이즈 룩, 믹스매치 룩, 스트리트 룩 등으로 나타났고, 정치적 메시지를 반영한 슬로건 룩 또는 다양한 퍼포먼스의 패션쇼 등으로 표현되어 억압의 저항성, 해체성, 불규칙성, 풍자성 등을 의미한다.
다원적 교류형은 현대 패션에서 패션 시스템 전반에 다양한 분야와 콜라보레이션 또는 첨단기술의 결합을 통한 고객과의 소통, 기존 패션모델의 범위가 확대된 다양한 소통적 교류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는 명품브랜드의 가치상승을 위한 마케팅의 일환과 하이패션이 주도하는 패션 트렌드로 대중에게 유행을 전파하여 더 많은 고객을 유입하는 권력의 우월성이 내재된 것으로, 권력과 억압이 함께 공존하는 소통성, 창조성, 다양성, 우월성 등을 의미한다.
이를 바탕으로 본 논문의 작품제작 결과는 다음과 같다. 패션에 표현된 권력의 억압적 사례 분석에서 도출한 4가지 특성에 따라 총 8작품을 제작하였다. 작품Ⅰ·Ⅱ는 권력의 억압적 특성 중 가학적 왜곡형, 작품Ⅲ·Ⅳ는 권위적 과시형, 작품Ⅴ·Ⅵ은 풍자적 해체형, 작품Ⅶ·Ⅷ은 다원적 교류형 등을 반영하였다. 본 작품들은 권력에 의한 억압의 고통과 고난을 극대화하기 위해 스타킹을 소재 개발하여 모든 작품에 응용하였다.
작품Ⅰ은 절대 권력의 참혹한 결과로 피억압자의 정신과 육체에 새겨진 폭력적인 고통의 흔적들을 소재 개발한 스타킹 원단으로 재현하여 가학적이고 왜곡적인 형태의 노출과 은폐, 왜곡성이 적절하게 믹스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작품 Ⅱ는 피억압자로 대변되는 여성에게 가해진 성적 억압을 표현한 작품으로 남성권력의 억압적인 응시를 부각하여 몸에 밀착된 바디컨셔스한 스타일로 스타킹과 메탈을 사용하여 페티시적인 에로틱한 이미지를 표현하였다.
작품 Ⅲ은 절대 권력을 가진 남성의 우월한 힘이 반영된 작품으로 피억압자에게 가하였던 권력의 힘과 억압의 강도를 빅 룩 스타일의 맥시멀리즘한 클래식 코트를 제작하여 억압자의 권위적·과시적인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작품 Ⅳ는 독재정권과 군대에서의 엄격한 위계질서에 따른 권력의 고유성이 반영된 클래식한 밀리터리 코트로 전체적으로 사이즈를 크게 변형·과장시켜 독재자의 강인하고 위엄한 모습을 과시적인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작품 Ⅴ는 권력의 억압에서 노동착취와 고통 속에 살아온 노동자들의 작업복을 변형한 점프 슈트로 몸 전체에 지퍼를 달아 개폐함으로써 노동착취에서 벗어나고자 한 피억압자의 개혁의지를 해체적·저항적인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작품 Ⅵ은 피억압자들이 단합된 힘을 통해 권력에 대한 저항과 억압의 해방을 반영한 작품으로 메탈 고리를 통해 기존의 옷을 입는 방식이 해체·재구성되고, 바지 양 옆에 큰 구멍을 뚫어 저항하는 모습을 해체적인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작품 Ⅶ은 억압을 대변하던 스타킹에 대한 소재의 인식을 탈바꿈하여 억압을 새롭게 재해석한 벌룬 형태의 '페이커 퍼' 코트를 제작하였고, 몸 전체에 구멍을 뚫어 권력과 억압이 소통·교류하는 통로를 제시하며 아방가르드한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작품 Ⅷ은 현대 사회의 의사소통적인 권력과 억압의 공존을 반영한 작품으로 다양한 이질적인 소재들을 믹스하여 두 가지 이상의 연출이 가능한 믹스 매치 스타일을 과시적인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이처럼 권력의 억압적 표현을 응용한 패션디자인 개발은 과거와 현대까지 다양하게 변모해 온 권력과 억압의 표현 양상을 예술적 접근을 통해 현대 패션디자인으로 해석하여 새롭게 제안함으로써 독창적인 시각자료로 제공될 것을 기대하며, 패션을 통해 권력과 억압이 서로 소통·교류함으로써 창조적인 디자인의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