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본 논문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다: 마가복음의 내러티브가 예수의 신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예수 본인은 스스로 신적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는가? 많은 학자들은 그리스도 공동체가 아주 이른 시기에 예수를 경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최소 기원후 49-50년 이전). 그리고 많은 학자들이 예수의 자의식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대부분이 역사적 예수 연구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 중에는 예수의 신적 자의식에 대한 연구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복음 단독으로 연구된 것은 적으며, 마가복음의 텍스트들과 예수의 신적 자의식을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더더욱 적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마가복음의 내러티브가 예수의 신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고, 이것은 예수의 자의식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두 가지의 도구를 사용한다: 첫째는 비판적 실재론이다. 이것은 마가의 역사적 개연성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이다. 또한 마가복음의 텍스트에 나타난 여러 개념들을 종합한 결과가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마가복음의 텍스트에 나오는 예수는 마가복음의 저자/화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타동적 대상(transitive objects of knowledge)이다. 우리는 이 지식이 마가복음의 저자/화자가 예수를 그의 사유 속에서 재생산 혹은 재구성한 결과물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식과 예수는 엄연히 구별된다. 예수는 마가복음의 저자/화자가 가진 그 지식과는 구별되는 자동적 대상(intransitive object)이다. 과학철학이 가진 원리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동적 대상인 예수의 자의식을 발견하기 위해, 수많은 지식의 타동적 대상들의 기제들(mechanism)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는 그 기제들을 마가복음의 텍스트들과, 이것이 지시하고 있는 많은 정보들 안에서 찾아야 한다. 그 정보들은 예수와 그의 청자들 사이에서 경전으로 여겨졌던 구약성경의 텍스트들과, 동시대의 백과사전적 지식들, 그리고 그들이 공유하고 있었던 세계관의 틀에서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인지언어학적 방법론들이다. 마가복음의 텍스트들은 단순히 구약의 텍스트들을 병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가복음의 텍스트와 구약의 텍스트 사이에 있는 것은 개념들 사이의 사상이다. 마가복음의 화자/저자는 자신의 청자/독자들과 공유하고 있었던 개념들을 가지고 예수에 대한 개념을 사상시키기를 원했다. 마찬가지로 화자로서의 예수도 자신이 가진 개념들을 청자들의 개념들과 사상시키기를 원했다. 이 정보들은 마가복음의 텍스트 속에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인지활동을 연구하는 인지언어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방법은 예수가 청중들에게 어떤 자의식을 드러내기를 원했는지를 마가복음의 텍스트들을 통해 알 수 있도록 해 준다.
한편 마가복음이 기록될 당시의 1세기는 구술-상연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텍스트에 대한 개념과 1세기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개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글쓰기와 읽기가 아닌 말하기와 듣기를 매체로 하는 방식은 정보전달보다는 의사소통의 목적이 있다. 의사소통의 방식은 생각할 시간이 없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화자와 청자 사이의 장기기억에 의존하게 된다. 화자는 청자들의 장기기억 속에 있는 정보를 환기시키는 방식으로 말하게 되고, 청자들은 자신의 장기기억 속 정보를 사용해 화자의 말을 알아듣게 된다. 말하자면, 화자의 개인기억과 청자들의 집단기억이 소통하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기억을 신뢰할 수 있을까? 학자들에 따르면, 개인기억과 집단기억 둘 다 얼마든지 왜곡되거나 편향될 수 있다고 한다. 예수 전승이 사람들의 기억에 의해 전해졌다면, 우리는 과연 그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을까? 학자들은 예수에 대한 기억 전승이 상당히 엄격하게 이루어졌고, 공동체의 집단기억에 의해 계속해서 검증받았으며, 권위 있는 전승 지킴이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당시의 역사 서술에 대한 관점은 계몽주의 이후의 실증주의적 관점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1세기의 역사가들은 가능한 한 사실에 근거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역사가들은 자신이 기록하는 역사적 사실들을 자신이 해석하기 위해 역사가 자신이 경험한 것이나, 혹은 실제로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목격자 진술을 참고했다. 마가복음은 이 두 증거에 의해 그 역사적 개연성이 충분하다 할 수 있다.
필자는 마가복음의 텍스트가 드러내는 예수의 신적 정체성, 그리고 예수자신이 드러내는 신적 자의식은 구약성경 텍스트의 개념들을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개념들을 가지고 청자들과 소통하려면, 청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사용해야만 한다. 담화의 특성상, 이미 알고 있는 정보에 대한 텍스트는 생략될 수 있다. 그리고 특정한 문법적 표지들을 사용하여 현저성을 부여하여 특정 정보를 환기시키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생략되거나 문법적 표지들에 의해 환기되는 정보들은 단편적인 것들이 아니다. 이 정보들은 인간의 머리/마음속에서 소위, 원형 범주화라고 하는 방식으로 분류되어 있고, 이 문법적 표지들은 그와 관련된 여러 개념의 덩어리들을 함께 환기시킨다. 이것을 틀(frame) 이론 혹은 이상적 인지모형(ICM)이라고 한다. 한편, 개념의 사상은 은유적으로 이루어진다. 언어현상으로서의 은유가 외연과 내연 간의 사상으로 이루어지듯이, 개념도 근원영역과 목표영역 사이의 사상으로 이루어진다. 언어현상으로서의 은유와 마찬가지로, 개념적 은유도 의미의 재발견뿐만 아니라 의미의 확장도 이루어진다. 개념적 틀보다 더 큰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개념적 혼성과정은 때로 확장된 개념요소를 창출하기도 한다.
마가복음의 서론부는 구약성경의 세 텍스트들(출 23:20; 사 40:3; 말 3:1)을 혼합한 것을 인용한다. 이것은 청자들이 가진 이 텍스트들의 정보들을 환기시키고 결국 예수의 신적 정체성에 접근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구약성경의 다른 텍스트들을 반향하는 마가의 텍스트들과 그 담화들의 구성은 예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정보를 제공했고, 청자들은 예수를 경배하고 있었던 공동체의 일원들이었기 때문에 문제없이 소통이 가능했다. 예수는 새출애굽의 때에 주의 길을 걷는 하나님의 정체성을 가진 것으로 드러난다. 한편, 예수는 마가복음에서 하나님을 "Abba"라고 부르고,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며, 자신을 포도원 주인에 비유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 말한다. 이 언어적 표지들은 다니엘 7:13-14의 "인자 같은 이" 개념과 시편 2:7과 110:1의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개념을 반향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가 이 두 개념을 통합한 자의식을 가졌다는 증거가 된다. 예수가 가진 인자-메시야 자의식은 선재하는 이, 신적 계시자, 하나님과 권세를 공유하는 이, 종말의 심판자이다. 예수가 이러한 자의식을 당시에 가질 수 있었음을 나타내는 유사한 증거로는 여러 제2성전시기 유대 문헌들에 나타나며, 특히 에녹 1서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예수는 고난 받는 인자에 대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이사야 53장의 "여호와의 종" 개념과 인자 개념을 통합했을 개연성이 아주 높다. 이것은 다니엘서의 영향을 받은 제2성전시기 문헌들에 나오는 순교 사상을 일부 반향한다.
마가복음이 묘사하는 예수는 예수를 다윗을 능가하는 메시야로 묘사한다. 예수의 메시야 인식은 서기관들의 주장에 반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메시야가 다윗의 주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예수가 천상적 인자 개념과 메시야 개념을 통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마가복음은 예수를 자연을 통제하는 이로 묘사한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의 장기기억 속에는 자연을 통제하는 권시를 가진 하나님이라는 정보가 있었다. 마가복음의 텍스트는 여러 가지 문법적 장치들을 사용하여 그 하나님의 정체성과 예수를 일치시키고 있다. 또한 마가복음은 예수를 새 출애굽 시대에 참 목자로서 돌아올 하나님의 정체성과 일치시키고 있다. 마가복음의 화자는 거짓 목자로 드러난 헤롯 안티파스의 행동과 예수의 행동을 비교하고, 마가복음의 텍스트는 예수가 상징적 행동과 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묘사한다. 청자들은 자신의 장기기억 속의 정보들을 통해 예수를 관찰하면서, 그가 하나님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다시금 깨달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