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마태 20,1-16 중 마태 20,1-15의 의미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로 불리는 마태 20,1-16은 구원의 문제를 다루는 마태오의 신학을 보여준다. 마태오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의 갈등상황에 직면하여, 공로에 선행하는 하느님의 자비를 강조한다. 그는 서로 다른 노동시간에도 같은 품삯을 받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비유를 모두가 동일한 보상을 받는다는 메시지로 풀어낸다.
그러나 마태오의 편집요소를 제거하고 앞 문맥에서 흐르던 주제와의 연계성을 배제하면 마태 20,1-15에서 다른 메시지가 드러난다. 이는 예수의 본래 비유로 평가되는데, 여기서 예수는 가난한 이들의 경제 문제를 보살피는 마음을 가르친다. 이처럼 마태오의 편집관을 거두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관심과 함께 노동과 임금의 의미를 일깨우는 메시지가 드러난다.
이 비유에서 포도밭 주인은 하루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서성거리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향한 연민의 마음을 보여준다. 주인은 하루 품삯으로 온 가족이 간신히 생계를 이어나가는 상황을 알고 한 사람이라도 더 고용하기 위해 여러 차례 장터에 나간다. 일꾼들은 '정당한 삯'을 주겠다는 약속에 따라 노동에 참여하고 주인으로부터 모두 당당하게 품삯을 받는다. 그러나 이른 아침부터 일을 한 사람들은 노동량에 비례하지 않는 품삯에 불만을 토로한다. 주인은 이러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연출하여 노동과 재화의 의미를 재고하도록 청자를 이끈다. 모든 일꾼에게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하루 생활이 가능한 임금을 줌으로써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주인의 태도가 뚜렷하게 부각된다. 이익창출에 기여한 바에 따라 임금을 지불하는 시장경제논리와는 다른 정의관이 보인다. 이처럼 예수는 마태 20,1-15를 통해 '생명을 살리는 하느님의 경제정의'를 제시한다. 모든 것은 자비하신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선물이라는 이해는 우리들에게 신앙인다운 선택과 실천을 하도록 이끌며 이를 통해 하느님 정의를 실현하도록 길을 열어준다.
자본주의 경제 논리와 배치되는 것으로 보이는 노동과 기업, 자본에 대한 이해는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가 발간한 『기업리더의 소명(Vocation of the Business Leader: A Reflection)』에서도 파악된다. 이 책에 담긴 기업의 윤리는 경제적 가치에만 초점을 두지 않는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의 가치를 지향하는 기업 활동의 윤리를 크게 강조한다. 한편 교회 내 활동 중 EoC(Economy of Communion)에서 이러한 윤리가 이미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익의 극대화를 자본의 효율적 사용에 대한 기준으로 보던 기존 시각의 변화가 감지된다.
전 세계적으로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작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태 20,1-15의 메시지가 주는 울림은 우리 삶을 지배하는 가치관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도록 촉구한다. 모든 것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인식하고 노동과 재화의 참된 의미와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되짚어 보게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내일을 희망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재화를 베푸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