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불평등 문제는 인간에 대한 보편가치로서의 인권과 사회체제의 기본가치인 민주주의에 대한 중요한 평가척도이다. 그에 따라 한국사회 역시 여성에 대한 폭력에 있어서 국가의 공권력을 동원한 예방, 단속, 상담 및 구제정책이 실행되고 있으나, 기혼여성의 데이트폭력은 방치되고 있다. 기혼여성에 대한 폭력은, 결혼내의 배우자이든 혼외관계 상대남성이든, 남성의 독점적 지배속에서 이루어지며, 여성의 성(性)을 매개로 한 이데올로기와 결혼을 매개로 한 가족주의 법체계와 국가정책에 의해 유지되고 지원된다.
본 연구는 결혼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인 여성가족부 산하 '여성긴급전화1366'의 상담원을 대상으로, 기혼여성의 데이트에 대한 태도와 의식을 분석하고 폭력피해자에 대한 공적영역에서의 구제제도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방법으로 여성의 폭력적 억압, 특히 성(섹슈얼리티)억압에 대한 여성주의 의식과 법적, 제도적 한계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1366'은 정부에서 운영 지원하는 상담기관으로서 ① 공적영역에서 여성의 보호와 가족주의 옹호가 대립하는 곳이며, ② 가정폭력과 혼외 데이트폭력이 드러나는 공간이며, ③ 성평등 가치를 중심에 둔 구성원들의 집단이다.
구체적인 연구내용으로는 첫째, 결혼은 여성의 욕망과 행위에 직접적이고 중대한 제한으로 작동한다. 특히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결혼을 기점으로 인격적 판단의 근거가 되며, 혼외데이트폭력 피해자로 하여금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규범이 된다. 이에 따라 기혼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결혼에 복종하거나 결혼에서 충족되지 않는 성적욕망과 성행위는 불허되거나 은폐되어야 한다. 1366 상담원들은 기혼여성의 데이트에 대하여 근본적 인권으로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판단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결혼제도 하에서는 은폐된 상태로 혹은 일시적 일탈로서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혼외데이트는 가족에 대한 무책임이며 결혼에 따른 성적배타성 위반이라 판단한다. 어느 누구도 섹슈얼리티가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만 한정되어야 한다는 현실의 결혼제도 자체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거나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즉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규범, 즉 성적 자기결정권과 성적 배타성 간의 혼란과 타협 속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위치해 있음을 드러낸다.
둘째, 이러한 가치규범의 대립은 한국의 이중적 법체계와 정책에 뿌리를두고 있다. 즉, 헌법과 민법은 개인의 주체적 결정과 행위를 인격권의 가치로 규정하고 옹호하며, 성적 자기결정권도 인격권의 일부로서 개인의 주체적 행위로 승인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나 직업에 관한 법들은 가족주의를 가치로하여 여성을 출산과 양육의 수행자로 가족에 결박시킨다. 여성의 취업은 일·가정양립에서, 양육과 보육은 건강가정의 가치에서만 국가의 보호와 지원 범위에 들어오며, 성년의 대학생자녀조차 부모의 소득에 연동되어서 장학금과 학자금대출의 자격을 부여받는다. 여성의 노동과 여성의 시간은 출산, 양육, 자녀교육에 종속됨으로써 국민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요약하면, 한국의 기혼여성은 결혼 내의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만 성적욕망을 실현할 수 있으며, 출산과 양육의 임무를 수행하는 가족의 일원으로서만 노동과 복지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구제하겠다는 정부의 여성정책은 가족주의 가치의 법체계와 충돌함으로써 기혼여성의 데이트폭력에 대하여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여성의 주체적 행위와 그 하나인 섹슈얼리티의 보호는 현재의 결혼제도와 법체계의 변혁이 없이는 실현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