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성혐오, 젠더폭력, 성차별은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성폭력예방교육, 젠더감수성교육, 성평등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성평등교육이 절실히 요구되는 학교 현장은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십대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십대들에게 페미니즘은 이해하기 어렵고 혼란을 줄 것이라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반페미니즘 정서와 연결된 이러한 입장은 십대들에게 페미니즘 교육의 기회를 차단하는 결과를 낳는다.
본 연구는 비판적 해석의 힘을 키우는 것과 자기 정체성 탐색이 중요한 십대에게 페미니즘이 유용한 자원과 도구를 제공할 것이며, 특히 십대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 현장에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페미니즘 교육실천을 하고 있는 중고등 대안학교의 사례를 통해, 십대들과 함께 하는 페미니즘 교육의 구성과정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살펴본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성세대의 우려와 달리 십대들은 자신의 일상 경험을 해석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찾고 있다. 십대들은 부모와 교사의 태도에서, 또래문화 속에서 젠더규범, 혐오, 성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장면들이 이미 '일상'이 되어서 너무 익숙하고 편한 것이 되어버렸다는 점,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사소한 것'을 지적하는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끝난다는 점이다. 십대들은 사회 지배적인 젠더규범과 성차별적인 문화를 통해 여성의 사회적 위치, '남성이 아닌' 존재들의 부정을 인식하게 된다. 한편 여/남학생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발견된다. 여학생의 경우 한국사회 여성의 위치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며, 자신의 경험을 공감받고 격려와 용기를 얻는다. 반면, 남학생의 경우 동성또래집단의 변화를 이끌어낼만큼의 힘과 실천은 부족하며 여성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상식과 소양을 갖추는 데 의미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십대들이 젠더와 성에 대해 배우고 습득하는 데 있어 교사의 태도와 가정의 분위기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사와 부모들의 변화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둘째, 지속가능한 페미니즘 교육실천을 위한 몇 가지 과제를 제시한다. 남성적 가치에 기반한 전통적인 인식론을 비판하며 대안적 가치를 추구하는 페미니즘 인식론의 강조는 페미니즘이 제 위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여/남학생 사이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는 데 필요하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는 십대들에게 퀴어교육은 다양한 정체성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와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문화정착, 주체 재생산을 위한 교사교육, 교과와의 연계에 대한 교사들의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십대들이 '여자, 남자로 양분된 세상' 둘 중 하나에 배정받아 '반쪽 세상'에서만 살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여기, 십대들이 속해있는 학교가 성평등하고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이들이 성평등한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다양한 교육실천이 필요하다. 오랜 세월 속에서 한국 사회 뿌리깊이 자리잡은 성차별, 혐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더 많은 상상력과 적극적 실천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