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한국 ICT 산업에서 대표적인 산업규제정책으로 평가받는 WIPI(Wireless Internet Platform for Interoperability) 기술표준정책의 변동(형성·폐지)과정을 Kingdon의 다중흐름모형(Multiple Streams Framework)을 통해 기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 과정을 통해 WIPI의 정책의제화 성공요인을 탐색하고, 구체적인 정책혁신가를 파악하며, 의제 형성 및 폐지 과정의 정책양상의 차이점 및 비합리성 여부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당시 정부 내부문헌, 한국무선인터넷표준화포럼(KWISF) 운영결과보고서 및 회의자료, 언론의 보도자료,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록 등의 자료를 활용한 시기별(형성기, 폐지기) 비교분석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다음과 같은 함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WIPI가 정책의제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과거의 익숙한 방법(경로의존성)의 채택', '시장실패 우려로 인한 정부개입의 필요성', '유연한 국제통상 협상전략', '정부의 강력한 의지' 총 4가지로 파악되었다.
그리고 의제 형성기와 폐지기 간 여러 차이점이 발견되었다. 문제의 흐름을 비교한 결과, 형성기에는 정부의 자체 시장조사·관찰 등을 통해 문제를 인식하게 되고 반면 폐지기에는 정책 도입 이후 시장의 반응, 소비자 여론, 정치권의 비판 등을 통해 정부가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정책의 흐름을 비교한 결과, 형성기에는 정부주도의 정책기조에 힘이 실리면서 '무선인터넷산업 활성화' 측면에서 그 정책대안으로 'WIPI 탑재 의무화'가 선택된다. 반면 폐지기에는 민간주도의 정책기조에 힘이 실리면서 '소비자 선택권 보장' 측면에서 그 정책대안으로 'WIPI 탑재 의무화 폐지'가 선택되었다.
정치의 흐름을 비교한 결과, 형성기에는 정권(진보)의 변화가 없었고 정치권에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대내적으로는 정치의 흐름이 미약하였으나 대외적으로 조직화된 정치적 힘(미 무역대표부, 퀄컴, SUN)이 'WIPI 탑재 의무화' 에 강한 방해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반면 폐지기에는 정권의 변화(보수)가 있었고 정치권에서 언급되는 등 큰 관심을 끌었다. 대내적으로 정치의 흐름이 매우 강했으며 이는 결국 'WIPI 탑재 의무화 폐지'를 이끌어냈고, 대외적으로 조직화된 정치적 힘(캐나다·블랙베리·해외언론, 미 무역대표부)이 'WIPI 탑재 의무화 폐지'에 큰 도움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정책의 창 측면을 비교한 결과, 형성기에는 정책의 흐름이 문제의 흐름과 결합되어 문제의 창 유형으로, 폐지기에는 정치의 흐름이 문제의 흐름과 결합되어 정치의 창 유형으로 정책의 창이 열리게 되었다.
정책혁신가의 측면을 비교한 결과, 형성기에는 전문성과 실질적 권한을 모두 갖춘 ETRI와 ETRI 소속 H가 실질적인 정책혁신가로 분석되었다. 반면 폐지기에는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 여·야 위원들, 특히 다년간 정통부 관료로 근무하고 정통부 차관을 역임하였으며, 계속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B 의원이 실질적인 정책혁신가로 분석되었다.
마지막으로 의제 형성 및 폐지 과정의 비합리성을 분석한 결과, 의제형성과정에서 나타난 경로의존적인 정부의 시장개입은 시장의 요구나 정치적 개입 없이도 독립적인 정책의 흐름을 중심으로 의제가 형성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의제폐지과정에서는 정책대안의 선택과정에서 시장 여론과 정치권의 개입이 큰 영향을 발휘하면서 'WIPI 탑재 의무화 폐지'가 선택되었다. 이 또한 독립적인 정치의 흐름을 중심으로 의제가 설정되거나 변동될 수 있음을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ICT분야에서 대표적인 규제정책 사례로 평가받는 WIPI 기술표준 정책을 재조명함으로써 기술표준의 특수성이 존재하는 ICT 산업에서 정부와 시장의 기술표준개발 주도권에 대한 고찰을 하게 해준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자유무역협정 체제하에서 국가주도의 기술표준 개발은 언제나 기술장벽에 대한 무역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하며, 산업 내의 관점에서 벗어나 국제정치경제의 관점에서 많은 대비가 필요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