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광화문 앞에 설치된 동물상을 해치(獬豸)로 부른 이후 서울특별시가 이를 시의 상징으로 지정함으로써 이 동물상은 중국 신화의 신수인 해치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약 150 년 동안 지속되어온 이러한 해석은 여러 사실에 비추어 오류로 보이며 이 동물은 원 무늬를 지닌 사자일 뿐이다. 고대 한국의 사자 이미지는 자연 사자에서 보이는 것처럼 민 무늬의 털문양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7∼9 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원무늬 사자상이 처음 나타났다가 18세기 영조시대에 다시 등장하였다. 그 이후로 원무늬를 지닌 사자의 새로운 이미지는 독특한 스타일로 고정되면서 민무늬 사자 문양과 공존하게 되었다. 하지만 조선 말기(1850-1910)에 이르러 고종과 관료들에 의해 원무늬 사자상이 해치로 인식되는 도상 해석의 착오가 일어났다. 해치는 중국의 상상 동물인데,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고 인간의 죄를 판결하는 법관의 상징으로서의 날카로운 외뿔을 가진 신양이어서, 자연의 사자와는 전혀 다른 종류이다. 자연의 사자 머리에는 뿔이 없다. 머리에 외뿔이 달린 해치가 뿔이 없는 원무늬 사자로 변형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은 없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과 같은 인접국에서 원무늬 사자상의 정체는 사자로 인식되었을 뿐이며, 외뿔이 달린 해치로 규정한 사례를 찾을 수 없다. 고종시대에 광화문의 사자상이 해치로 인식된 이후 현재 박물관이나 미술관, 불교사찰, 그리고 학술 문헌에서조차 원무늬 사자가 해치로 불리고 있는 오류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이에 본 연구는 조선 말기 사자상의 해석에서 발생된 문제를 명백히 지적하고, 향후 학계와 박물관 등 관계기관에서 조선시대 원무늬 사자 도상과 해치의 관계에 대한 적극적 재검토와 함께 시정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