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근육병 당사자들의 고통과 고통의 와중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그들의 존재론적 삶의 의지와 철학 등을 읽어내기 위해 그들의 경험세계로 직접 스며들어가 그 삶의 고통과 희망의 깊이를 살펴보고자 하는 데에 있다. 이에 '근육장애인들의 삶의 체험은 어떠한가?' 를 연구문제로 정하고 당사자들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는지, 그리고 이러한 삶의 전략에 영향을 준 구조적이고 광범위한 사회 조건이 무엇인지를 밝혀내고자 하였다.
본 연구에는 총 17명의 근육장애인이 참여하였고, 한 명을 제외하고 근육병 진단을 받은 지 10년 이상 경과했으며 나이는 25세 이상이다. 근육병 관련 협회에 종사하는 게이트키퍼를 통해 최소한의 선정기준을 충족한 근육장애인을 소개받아 이들 중 연구의 목적과 취지를 이해하고 참여에 동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실시하였다. 본 연구의 주요 자료는 심층면담자료이며 인터뷰 시 관찰 및 환경조사도 함께 수행하였다. 수집된 자료는 Strauss와 Corbin(1998)의 근거이론 연구절차인 개방코딩, 축코딩, 선택코딩 순으로 분석하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개방코딩 단계에서 근육장애인들의 삶을 총 452개의 개념으로 구성했다. 개념들 중 그 속성에 근거하여 유사성과 의미상의 관련성을 묶어 97개의 하위범주로 구성했고 이 중 유사하거나 공통적인 범주들을 연결지어 22개의 범주로 구성했고, 이를 패러다임에 따라 배열하는 축코딩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죽음을 향해 치닫는 삶」, 「유폐된 생」, 「표류하는 삶」이라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된 인과적 조건으로는 「무너진 몸」, 「생물학적 생존」, 「태산지고 살아가기」로 나타났다. 또 맥락적 조건은「절망 연습」, 「정상화 기반 상실」, 「벼랑 끝 일상」, 「진단 문맹」으로 나타났으며, 작용/상호작용 전략에 영향을 주는 중재적 조건들로는 「사회적 배척」, 「사회적 폭력」, 「총체적 재활 장벽」, 「일으키는 손」으로 나타났다. 근육장애인들은「반동적 저항」, 「자기실존 떠맡기」, 「열린 세계로 나아가기」, 「장애 구속에서 해방시키기」의 작용/상호작용 전략으로 근육장애와 살아가고 있었으며, 이는 「삶의 권한 회복」, 「자력 입신」, 「장애 초월」, 「책임 있는 주체로 재탄생」의 결과로 나타났다. 또한 현상에 대한 반응과 대처, 조절과 관계된 작용/상호작용의 연속적 연결을 분석하는 과정분석을 통해 근육장애인의 체험에 대한 본질을 보고자 하였다. 연구참여자들의 체험은 「죽음을 향해 치닫는 삶」, 「유폐된 생」, 「표류하는 삶」이라는 현상의 발현 이후 '삶의 소외 단계', '맹목적 저항과 수용단계', '전략적 타협과 삶의 확장단계', '상황개선 노력 단계', '주체의 부활 단계', '장애초월 단계' 라는 여섯 가지 단계로 나타났다.
연구참여자들은 진단 유형, 성별, 학력, 집안 배경 등을 막론하고 모두 삶의 소외단계로 진입했는데, 이 단계에서 연구참여자들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각이나 지지가 부족했고 단지 생물학적 목숨만 이어가는 존재로서의 삶을 영위했다. 성년이 된 후 뒤늦게 근육병이 발현한 사람들은 발병 전 자신이 품었던 삶에 대한 기획과 희망을 포기했고, 어린시절에 진단을 받은 또 다른 연구참여자들은 점차 악화되는 자신의 증상을 자각하면서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일부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의 근육병에 대한 반발 심리로써 가족, 주변사람들과 인정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들의 저항은 반동적 차원에서 수행되었고, 이러한 저항이 계속될수록 연구참여자들은 더 탈진했고 자기 자신에 대한 낙인을 부여했다. 또 다른 연구참여자들은 바로 장애를 수용했지만 근육장애를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상황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한계상황은 제한점이나 불가능이라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탐색하고 발굴하여 집중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수용단계에 진입한 연구참여자들은 과도한 욕심을 내려놓고 세상과 자기 삶과의 화해차원에서 과업을 성취하려고 노력했다.
맹목적 저항단계의 연구참여자들은 전략적 타협단계로 진입하였다.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의 발버둥에도 사회는 변하지 않았기에 생존을 위해 주변 사람들과 근린체계, 학교체계에서 타협을 모색했다. 이 타협은 장애에 대한 능동적 수용은 아니지만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는 등 나름대로 삶을 지속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수용 단계의 연구참여자들은 삶의 확장단계로 진입하였고 이는 자신의 근육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사회 속에서 재구성 하는 것이었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자원봉사활동과 온라인 근육장애인 커뮤니티(카페) 활동이다. 여기서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의 장애로 인한 고통과 어려움을 공유하는 동시에 자신의 장애 극복 또는 성공사례를 공유하고 전파하였다.
전략적 타협단계와 삶의 확장단계의 연구참여자들은 모두 상황개선 노력단계로 진입하였다. 상황개선 노력단계는 개인차원에서는 나름대로 처해진 환경에서 불편한 환경을 개선시키려는 노력들이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시설을 개조하거나, 인테그라 마우스 등을 이용해 이동과 소통의 편의성을 도모하는 행동이 이에 속한다. 집단적 차원에서는 근육장애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여론을 형성하면서 복지와 지지 자원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장애환경은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개선 노력단계에서 연구참여자들은 지금까지의 견고하고 철옹성과 같은 장애의 문이 지속적으로 두드리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주체의 부활단계는 그 동안 자신의 장애로 인해서 스스로 포기했거나 또는 타자에게 압류당했던 '가능성' 을 찾아오고, '자기의 권리를 회복' 하는 과정이다. 연구참여자들은 집에 머무르며 치료 가능성에만 매달리기 보다는 같은 근육장애인들의 우울을 예방하고 삶에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했다. 또한 사회활동을 하며 장애인이 아닌 주체적인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주체 부활단계에서 연구참여자들은 자존감향상과 유능감을 확인하였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내야만 했던 연구참여자들도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여 세상 밖으로 향하거나 자기의 공간에서 취미를 향유했다.
장애초월 단계에 진입한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의 장애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성하는 작은 구성요소로 받아들였고, 이것을 불가능의 조건, 제한된 조건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취약성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이를 오히려 자신의 장점으로 살렸다. 장애로 인한 원망, 운명론적인 체념, 반동적 정서 등을 내려놓고 근육장애인의 삶을 다양한 삶의 유형 중 하나로 인식하였다. 죽음의 공포, 더 악화될 것이라는 불안, 신약개발에 대한 초조함이 사라지고 일상에 충실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분석들을 통해 나타난 근육장애인의 삶의 체험에 대한 핵심범주는 「근육장애라는 죽음의 그림자와 동반한 삶에서 자기를 해방시키는 과정」이었다.
본 연구에서 나타난 현상과 인과적 조건, 맥락, 중재적 조건, 작용/상호작용과 결과 간의 관계를 근거자료와 지속적으로 대조하여 가설적 관계를 구성하고 이를 유형화한 결과 근육장애인들의 삶의 유형은 고군분투형, 가족지지형, 일상행복추구형, 인적자본개발형, 사회적책임형으로 나타났다. 또한 근육장애인들의 삶을 상황모형으로 나타낸 결과 개인과 가족, 장애공동체, 지역사회·조직, 국가·사회 수준의 체험과 문화가 삶과 상호작용하고 있었다.
위의 결과로부터 의료, 가족, 활동지원, 근육장애에 대한 인식, 근육장애인 자조활동, 근육장애인의 생존전략에 대한 논의와 함의를 도출하였다.
먼저, 지방 광역시·도 별 전문적 희귀질환 지역거점센터에의 정부지원 확대, 치료기술·신약개발 등의 연구개발 분야에 대한 정부지원확대 및 해외에서 개발된 치료제의 신속한 도입 및 의료보험 적용을 제안했다. 또한 근육장애인들이 과도한 재검사 절차 개선, 의료비 외의 경제적 부담 완화, 가족 유전자 검사비 지원으로 확대를 제안하였다.
근육장애인 활동과 관련하여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와 희귀질환 전문 응급센터의 운영을 제안했고,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을 확대를 위한 일선 교육현장에서의 장애이해교육 자료 등에 희귀질환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명시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자조활동의 정책적 육성을 통한 정보 교류 활성화, 정책 반영과 결정에 당사자주의 실현과 근육장애인만의 특성을 개입 방안 수립과정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정책적 함의가 도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