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석전) 정호(박한영)(1870~1948)은 구한말의 격동과 대일항쟁기의 질곡 속에서 민족의 혼인 불교문화 정신을 일깨우는데 생애를 다 바친, 조선말 대한 초 근대불교의 선각자요 민족의 지도자였다.
영호의 기본사상은 교학·선학의 겸학정신과 선수행에 있어서는 지율엄정, 그리고 화엄적 세계관과 겸전의 선사상으로 그의 불교사 인식관을 정리해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그 시대 산간불교, 산중불교로 전락해 버린 불교와 불교도들의 퇴락한 신앙생활을 계·정·혜 삼학의 겸수와 신구겸학의 교육 및 대중의 현대 포교 방식을 통해 불교 구원과 개신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또한 지율엄정을 역설 하면서 왜세불교에 동화되어 파계와 무애행을 자행하던 승려들을 통렬히 비판하였다.
유교사상의 전통사회 속에서의 배척과 한반도 주변 강대국가들의 문호개방 촉구 등 격랑의 시대가 요구하는 개방적 근대화를 원융회통의 화엄철학의 세계관과 『계학약전』을 집필하여 계율철학을 근본으로 불교근대화 교육을 강화 했었다.
영호는 불교의 퇴색한 환경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중심축으로 선을 강조하면서도 지행일합의 겸전적 기본입장을 지키고 전통적 선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한국불교의 주체성 확립과 정통법맥을 강조하고 불교인의 자각, 그리고 불교청년 양성을 위한 교육 및 포교교육 현대화 등을 중심으로 한 불교 유신운동을 전개한다.
영호는 종단의 권력 유착과 왜세에 침탈된 후 그들의 통치에 동화되어 自中之亂에 놓인 한국불교의 회생은 불교도인의 자숙과 성찰을 통해 불교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을 급선무로 보았다.
국가 미래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불교적 사명과 책임을 강조하는 한편 저항기 시대에 일본 조동종의 몰락한 행위에 반대하는 임제종 운동과 사찰령 폐지 운동을 전개하는 등 구불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었다.
이 시기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동북아의 약소국가들의 그 시대 지성인들의 과제가 국권회복과 민족문화 정신을 지키는 것 이였고 특히 한국은 사회 각 종교단체들과 유학생들의 구국 열정이 매우 성 했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