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전쟁에 대한 한국 개신교의 대응과 인식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해 봄으로써 한국전쟁 이후 한국 교회가 전쟁의 경험을 어떻게 해석해서 신학화했는지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국내·외의 극심한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의해 발발한 한국전쟁은 3년 1개월 동안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남과 북의 대립은 더욱 격화 되었고 남·북의 이데올로기적 적개심은 개신교인들과 공산주의자들 간의 상호 민간인 학살로까지 이어졌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국 개신교는 활발한 전쟁지원 활동과 구호활동을 펼쳤다. 전쟁의 승리를 위한 무기 대금 마련을 위해 헌납운동을 전개하고, 지원병을 모집하였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휴전반대 운동도 전개했다. 개신교는 공산주의를 '악마' 로 인식함으로써 휴전반대 운동을 최고의 구국적 행위로 이해했던 것이다. 또한 이 시기에 미국 정부와 미국 교회의 대대적인 구호물자 지원을 통해 전개된 구호활동은 한국 개신교를 '사회구호단체' 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선교 영역을 확대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한국전쟁 중 개신교의 대표적인 군선교 활동인 군종 제도와 포로선교 활동은 단순한 선교 활동만이 아니라, 고도의 심리전적 이데올로기전의 첨병 역할을 했다. 이러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 개신교는 전쟁에 단순한 객체가 아니라 전쟁 수행의 하나로 기능했다.
1953년 휴전된 한국전쟁은 한반도 전체를 초토화 시켰고 한국 교회 역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후 한국 개신교는 교회의 물리적 파괴를 복구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부흥운동과 전도 활동을 통해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일에도 주력했다. 또한 한국 교회는 전쟁으로 인한 신도들의 정신적 상처도 치유해야 했다. 교회에서 피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행했던 현세 위안적 설교는 점차 현세적 복을 구하는 기복적 신앙체계로 형성되었다.
한편 한국 개신교는 한국전쟁을 '성전' 으로 이해했다. 공산주의를 '악마' 로 규정하는 개신교의 전쟁 인식은 강력한 반공 이데올로기로 발전해 갔다. 또한 한국전쟁 중에 제공된 미국 교회의 막대한 구호 물자는 한국 개신교회의 재건에 큰 역할을 미쳤고, 이는 한국인 신자들에게 미국을 '구세주' 국가로 인식하게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반공·친미 이데올로기가 형성되었는데, 이것은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하나의 '신학' 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한국전쟁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내적인 기복 신앙과 외적인 '반공·친미 신학' 이라는 특질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후 한국 사회의 반공·친미 이데올로기와 상호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한국 교회를 한국 사회의 주류 종교로 부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국 개신교가 뿌리깊은 '반공·친미 신학' 을 어떻게 극복해 가는가는 향후 한국 개신교의 건강한 사회 윤리 형성과 통일에의 역할을 규정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