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일제 강점기 기독교 여성지식인이었던 박인덕의 삶의 궤적에 담긴 사상을 분석함으로써 조선 여성지식인의 의식 구조를 민족, 여성, 기독교의 상호 관계 속에서 고찰하고자 했다.
박인덕(1896~1980)은 근대로의 변혁과 식민지, 해방과 건국이라는 근대 조선의 역사적 전환기를 산 인물이었다. 그녀는 개신교 선교를 통해 기독교와 이화학당의 근대 여성교육을 받고 미국 유학을 거쳐 당대를 대표하는 기독교 여성 지도자로 성장했다. 한국 초기 기독교 여성 지도자로서 박인덕은 봉건적 구습에서 고통 받는 여성들을 해방시키고 무지에서 일깨울 사명과 식민지 조국의 독립을 위한 민족주의적 사명을 동시에 가지고 사회 활동을 전개했으나 1940년대 이후 대세순응론에 따라 일제에 협력하였다.
박인덕의 여성 의식은 자유주의적 여성주의로 대변된다. 그녀는 남성 본위의 전통적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모순을 통렬히 비판하고, 여성 교육을 통해 여성들이 전통적인 구습에서 벗어나 각자의 개성을 자각하고 정신적·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여성해방과 남녀평등을 이룰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통적인 성역할에서 여성의 위치를 부인하지 않고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모성적 여성주의 관점을 답습한 박인덕의 여성의식은 일제 말에는 조선여성의 전쟁 동원과 수탈을 위한 '군국주의적 모성'의 논리와 모순 없이 결합될 수 있었다.
보수적 경건주의 성향을 가졌던 박인덕의 기독교 신앙은 개인의 죄와 회개 또는 기복 신앙에 집중하는 개인 구령의 신앙으로, 탈정치적인 신앙의 양태를 보여주었다. 그녀에게 기독교는 미국 개신교였으며 기독교는 서구 근대적 문명과 동일시되었다. 미국 사회를 직접 경험하면서 서구 근대문명론과 결합된 박인덕의 기독교적 세계관은 강화되었다. 이렇게 미국 중심적 근대문명관으로 대표되는 서구 편향적 의식에 의존한 나머지 서구적 오리엔탈리즘에 매몰되어 그녀는 조선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 따라서 박인덕의 의식구조에서 여성과 기독교가 주요 변수였고, 양자를 잇는 공통항은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민족은 종속 변수였으며 이로 인해 일제 말에 친일을, 해방 후에는 친미로 이어지는 행보가 가능했던 것이다.
본 연구는 박인덕의 생애를 통해 그녀의 사상에서 민족, 여성, 신앙의 관계를 고찰했다. 여성과 기독교가 주요 변수이고, 민족이 종속 변수인 그녀의 사상 구조에서 오리엔탈리즘에 기반을 둔 박인덕의 여성인식과 기독교 신앙은 그녀의 민족적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그녀의 이러한 사상적 한계는 동일한 사상적 변수를 가지는 식민지 시대 기독교 여성 지도자의 사상 연구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