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는 인간의 생리적 작용, 인지, 동기, 행동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복합시스템으로, 정서의 작동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의식 안에서뿐만 아니라 언어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의식 바깥의 영역에서 정서와 기억은 쉼 없이 서로의 정보 처리 과정에 영향을 미치며, 한 개인이 외부환경을 해석하고 대처하는 방식을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서 그 원형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정서의 다차원적 작동과정 및 그 안에서 이뤄지는 기억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는 내담자가 안고 있는 심리적 문제에 효율적으로 접근하고 조력하는 데 있어서 밑거름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정서가 한 개인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임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인 경험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접근하는 데는 일부 한계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뇌과학, 신경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주관적 경험 세계, 특히 그 경험이 뇌에서 어떤 식으로 처리되며, 신경계와는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었고, 그 결과 정서가 심리치료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임이 확인되고 있다. 또한, 정서와 기억의 상호작용을 통해 처리되는 무의식에 대한 신경과학적 이해는 심리치료에서 외현기억(explicit memory)을 중시하던 입장에서 암묵기억(implicit memory)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이처럼 심리치료에서 인지 중심에서 정서 중심으로, 언어적 접근에서 신체를 기반으로 한 접근과 정서 소통 및 조절에 중점을 둔 개입으로의 전환이 이뤄지게 된 배경에는 신경과학, 뇌과학의 발전이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특히, 내담자가 안고 있는 심리적 불편감을 완화하기 위해 명확한 정서인식 및 적응적 정서조절이 필수로, 최근에는 마음챙김을 활용한 심리치료적 접근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외부와의 접촉을 통해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에 대한 거리 두기 및 객관적 관찰에 마음 챙김이 매우 유용하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며, 그 효과성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러나 기존의 마음챙김에 관한 연구들이 주로 효과성을 입증하는 것에 중점을 둔 나머지, 막상 심리치료 현장에서는 치료원리 및 배경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한 상태에서 기법 중심의 기술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치료원리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계적인, 더 나아가 상업적인 접근이 이뤄질 경우, 쉽게 치료적 한계를 노정할 것이 자명하며, 그로 인한 여러 부작용도 예상해 볼 수 있겠다. 수행방법으로서의 마음챙김을 치료 목적의 심리 치료에 접목할 때는 마음챙김의 수행원리와 단계,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심리적인 변화가 갖는 심리치료적 의미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심리치료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나 개념에 대한 불교적 관점에서의 해석과 이해가 뒤따라야 효과적인 접목이 가능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 확인한 결과, 초기불교적인 관점에서 정서와 기억의 상호작용은 인간의 심리적 어려움이 발생하고, 확장되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는 신경과학 및 서구 심리학에서 보는 인간 내면의 역기능적 패턴의 영속화 과정과 유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외부 자극에 대한 자동적 반응과 인지적 왜곡이 서로 맞물리면서 심리적 부적응이 가중되는 과정이 의식적이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처리된다는 점에서도 접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더불어 심리적 어려움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심리치료에서 자각 및 마음챙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현상이라 볼 수 있겠다. 이처럼 마음챙김이 인간의 심리적 고통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어떤 증상을 없애거나 치료를 목적으로 마음챙김을 하는 것은 마음챙김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지속적인 마음챙김을 통해 경험에 대한 태도 및 존재 양식(being mode)으로의 변화가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초기불교에서의 마음챙김은 계정혜(戒定慧)의 삼학(三學) 안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윤리와 규범의 토대 위에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음챙김을 통해 가시설(假施設)된 존재로서, 오래된 구조 혹은 습관으로서의 나를 해체해서 보는 것이 수행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수행체계 안에서의 마음챙김과 심리치료 안에서의 마음챙김은 다른 전제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된다. 특히 마음챙김을 심리치료에 적용하려는 심리치료자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챙김 수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마음챙김이 갖는 의미와 치료기제에 대한 바른 이해가 수행을 통해 체화되고, 여기에 심리치료 현장 경험이 통합되었을 때, 심리치료에 있어서 마음챙김의 체계적인 접근 및 효율적인 치료적 개입도 가능할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