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매개로 하여 인간의 사상 및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인 음악은 인류의 역사에 있어 의식주 욕구 충족의 직접적인 수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인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 및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어떠한 인물이나 사건, 장소를 상징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교차하는 장소인 도시의 역사 속에는 사람들에 의해 불리어 온 다양한 노래 및 음악이 있었고, 이들 음악이 중심이 되어 형성된 '음악경관' 또한 늘 존재해 왔다.
본 연구는 도시와 음악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자의 지적 호기심의 확장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도시의 다양한 경관 중 음악이 만들어 내는 경관, 즉 음악경관을 통해서 도시의 사회, 정치, 경제적 상황 또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각 시기에 따른 음악경관을 분석하고 그 속성을 도출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대상지로 선정한 광주광역시는 과거 마한시절부터 농경을 기반으로 한 경제적 풍요를 누려온 지역으로서 오랜 기간 동안 '도시'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며 융성한 문화와 예술 활동의 주된 무대가 되는 장소였다. 마한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 신창동 유적지에서 출토된 가락악기는 이 지역이 예로부터 높은 수준의 음악을 향유해 왔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된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도시의 음악경관을 연구하기 위한 대상 지역으로서 광주광역시를 선정하고, 근대 문화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186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총 다섯 시기로 구분하여, 광주의 음악경관을 분석하고 그 속성을 도출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전개에 앞서, 비교적 생경한 표현인 '음악경관(Musicscape)'을 조작적으로 정의하기 위해 이론 고찰을 통해 '경관'에 관한 선행 연구자들의 연구를 분석하고, 경관 속에 내재된 다양한 의미를 읽어내고자 했던 신문화지리학자들의 연구 관점을 차용하였다. 이와 함께 '음악경관'과 유사한 개념으로서 Schafer(1977)와 Westerkamp(1994)의 'Soundscape'에 대한 정의를 참고하여, 음악경관을 '음악과 관련한 환경 요소의 총합'이라 정의하였다. 그 다음, 도시가 지닌 음악경관을 분석하기 위해 이무용(1999)의 '도시경관요소 삼원 모형'을 기초로 경관의 요소를 공간·주체·사회적 요소로 분류하였다. 보다 세밀한 분석을 위하여 예술의 순환 및 예술과 사회 간의 상호작용과 관련한 Griswold(1994)의 연구를 참고하여 음악경관 분석틀을 도출하였다. 이러한 분석틀을 기초로 시기별 광주의 음악경관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광주 음악경관의 시기 종합적 속성을 도출하였다.
각 시기별 음악경관의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음악경관의 공간적 요소는 시기를 통틀어 지속적으로 정체성을 유지해 온 공간과, 음악경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다 사라진 공간, 한동안 단절이 있었으나 다시 생겨난 공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둘째, 음악의 창작 주체는 비슷한 신분적 혈연적 배경을 지닌 음악가들과 근대적 학교교육을 바탕으로 성장한 음악가들, 자발적 참여 의지에 의해 성장한 음악가들로 나눌 수 있었다. 셋째, 음악의 매개 주체 부분에서의 특징은 '후원자'가 시기를 통틀어 지속적으로 등장해 왔다는 점이다. 후원의 모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역 유지들이 중심이 된 '자발적·개인적 후원'에서 회사나 기관 등에 의한 '의무적·조직적 후원'으로 그 규모와 형태가 변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타 특징으로는 음악향유주체의 폭이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넓어졌다는 점과, 음악경관이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켜를 쌓아 올린 광주 음악경관의 시기 종합적 속성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가시성 및 의미성과 관련하여 광주 음악경관의 가시적 요소들이 지니고 있는 특징은 대부분 상업적 측면에서의 홍보 및 판매를 염두에 두고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음악경관의 형성에 있어서 자본주의적 요소의 반영이 점차 일상화 되었고, 대중사회의 도래에 기인하여 소비주체로서의 대중의 성향과 선택이 경관의 형성에 점차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회성과 관련하여 광주 음악경관이 지닌 특징은 사회적 변동 및 사건이 음악 경관의 형성과 변화에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제에 의한 국권 침탈, 1980년 5월 광주의 민주화운동 등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형성된 음악경관이 존재해 왔다. 이는 사회 현실을 모른척 하지 않았던 광주 음악경관의 사회 참여적 속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또한 역사성과 관련한 광주 음악경관의 특징은 흐름과 단절의 변증법 속에서 꾸준히 그 개성과 맥을 이어왔다는 점이다.
광주 음악경관의 권력적 속성은 자본주의와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음악경관의 형성 및 변화에 꾸준히 영향을 끼쳐왔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경관주체의 정체성은 판소리와 광주음악을 중심으로 형성된 음악경관을 통해 보다 명확히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 얻어 낸 광주의 각 시기별 음악경관의 분석 결과는 추후 광주의 도시브랜딩과 음악축제를 비롯한 관련 콘텐츠의 기획 과정에서 유의미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활용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또한 다음 세대를 위한 아카이빙의 필요성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오늘의 경관을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주체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그 의미의 해석은 우리가 아닌 다음 세대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구성하고 있는 음악경관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전승은 향후 다음세대에 의해 의미 있는 경관으로 기억되고 재해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