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지역의 정체성은 효다. 효가 지역문화의 정체성이 된 것은 인륜의 도리가 효이기 때문이라 볼 수 있지만 화성은 고려시대 최루백효자각을 비롯하여 화성전역에 있는 효자각이 많이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보다는 더 크게 지역의 효문화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이 용주사본 『부모은중경』이다. 화성은 정조의 효행이 살아있는 도시다. 정조는 『부모은중경』을 읽고 찬탄하였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이어져 내려온다.
용주사본 『부모은중경』의 배경은 정조가 부친의 묘소를 영우원에서 현륭원으로 옮기면서 용주사를 재궁으로 창건하여 그의 뜻을 담았다. 정조는 용주사 창건후 『봉불기복게』를 지었고 『부모은중경』과 변상도를 용주사에 하사하였다. 이는 부친인 사도세자에게 효성을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만백성의 효행실천의 교과서로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효행의 실천은 정조대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는 "부친에 대한 효행만이 효가 아니라 전생의 연과 타자를 위한 이타행이 진정한 효"라는 불은사상이 지역문화를 뛰어 넘어 국가의 정신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용주사본 『부모은중경』은 인륜이 지켜야할 효행실천의 교과서로서 불교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 볼 수 있다.
유교국가 조선에서 정조와 재상인 채제공이 『부모은중경』 에 대한 효심의 은혜사상에 감복하였다는 것은 유교의 효사상을 넘어서는 일대 변화의 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용주사본 『부모은중경』의 변상도는 효교육에 일대 변화를 주었다. 조선후기부터 『부모은중경』이 최고의 효경이된 이유가 이것이다.
1930년대에 『부모은중경』의 내용이 담긴 양주동이 작사한 '어머니 마음'이라는 노래는 전 국민이 애송하는 노래가 되었다. 이것은 효사상이 시대를 넘어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971년 용주사 주지로 부임하신 정무스님의 원력으로 퇴색되어 가던 우리의 효문화가 용주사본 『부모은중경』의 중심사상인 보은의 실천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정무스님은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효 문화운동에 진력했고 청소년에게 효행운동을 펼치면서 지역문화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갔다.
본 논문은 용주사본 『부모은중경』을 통하여 불교의 효문화가 지역문화를 형성하여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것에 관점을 두어 연구한 것이다. 이를 통해보면 『부모은중경』의 효사상이 지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현재에도 끼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