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기 본연의 특성, 즉 정체성을 지닌다. 하지만 외부로 비춰지는 이미지나 평가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면서 사회에 적응해 나간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도 하나의 사회적 행위자로서 내외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내려진 조직에 대한 인식과 판단, 즉 명성에 따라 정체성을 변화하면서 명성관리를 해나가는 것이다. 기존의 명성관리 연구는 주로 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몇몇 이해관계자를 넘어 국가 전체에 영향을 주는 정부조직의 명성관리야 말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그동안 연구가 소홀했던 정부조직의 명성에 대해 조직학적 관점에서 정체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국내정부조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반영한 조직개편을 단행하는 등 변화에 유연한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부조직에 대한 대중의 인식, 즉 명성은 부정적인 경향이 강하다. 국내의 경우 독재정권과 군부정권을 지낸 역사적 이력으로 정부불신의 이미지가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세월호 이슈는 30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한 대형 참사로, 피해자의 다수가 고등학생이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정부는 미숙한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해 사고대응에 문제점을 드러냈고 정부의 신뢰도, 즉 명성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었다. 이에 대통령은 사고 발생 한 달 여 후에 대국민담화를 통해 사고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밝히며 조직개편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개편 후 1년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정부는 사고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정부조직의 정체성, 커뮤니케이션, 명성, 각 요소들이 어떠한 상호작용을 하며 변화하였는지 깊이 있게 탐색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하여 정부조직에 명성관리 방향성을 제시하여 국민과의 신뢰, 즉 명성을 회복하도록 기여하는데 목적이 있다. 구체적인 연구문제는 다음의 세 가지이다. 1) 세월호 이슈의 시기 변화에 따라 정부조직의 정체성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2) 정부조직의 정체성-커뮤니케이션-명성은 어떤 관련성을 가지는가. 3) 세월호 이슈의 시기 변화에 따라 정부조직의 정체성변화에 명성과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구체적인 연구대상은 세월호 이슈와 관련한 정부조직으로 해양경찰청, 소방방재청,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그리고 신설된 '국민안전처' 이다. 이슈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총체적인 해석을 위하여, 해당 조직의 전·현직 구성원 11명을 대상으로 1:1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또한 보도자료, 브리핑자료, 대통령담화문, 언론보도, 국정조사 자료, 공개된 정부 내부 문건, 녹취록 등의 광범위한 2차 자료를 수집 분석하여 해석의 깊이와 객관성을 동시에 추구하고자 하였다. 조직학적 관점에서 발머의 5가지 정체성 이론 중 3가지 요소인 실재적, 전달된, 인식된 정체성 요소를 중심 분석 틀로 수정 적용하여 분석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분석 결과, 세월호 이슈의 시기 변화에 따라 정부정체성이 변화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고 정체성 변화에 따라 1-4기로 구분할 수 있었다. 구체적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기는 이슈가 발생했을 때부터 범부처사고대책본부(범대본)가 본격 대응에 나서기 전까지로 정부의 정체성이 제각각 커뮤니케이션 되면서 다중정체성, 다중목소리가 등장하며 혼란기에 들어선다. 조직내부에서는 전문성과 관료성의 대립이 있었고 관료성이 승리하면서 정부명성은 '비전문적' 으로 인식되었다. 이는 정부의 권위주의적 커뮤니케이션과 국민과의 관계성부족 때문인 것으로 보여 진다.
2기는 대통령의 첫 현장방문 후 범대본이 꾸려지고 정례브리핑을 포함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때부터이다.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정부는 범대본을 통하여 정체성을 일원화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며, 여론을 반영하여 적극적으로 위기커뮤니케이션을 실시한다. 하지만 조직 내외부의 세월호 이슈와 관련한 부정적인 이슈들의 영향력이 커 '믿을 수 없는' 정부라는 인식은 변화시키지 못하였다.
이에 대통령은 정부조직개편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출범시키겠다고 선언하며 3기에 들어선다. 점진적인 합의 없이 조직리더가 새로운 정체성을 선언하자 내외부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충격요법으로 다가간다. 또 지방선거, 월드컵, 교황방한 등 세월호 이슈 밖의 영향력 있는 이슈들이 등장하면서 국민과 실종자가족들의 정부정체성에 대한 인식, 즉 정부명성이 이원화되기 시작한다. 국민은 선언된 정체성을 '새로운 가능성' 으로 인식하는 반면, 유가족은 무책임한 '비전문가' 로 인식하게 된다.
4기에 들어서면서 실제로 정부의 새로운 정체성이 출범한다. 이는 실종자가족을 핵심공중으로 삼는 전문가적 정체성이 아닌, 국민을 핵심공중으로 삼는 초월적인 정체성이었다. 정부정체성은 외적으로는 국민안전처와 해양수산부로, 내적으로는 해양경찰청, 소방방재청, 안전행정부로 이중적이고 다중적인 정체성이 혼재되어 있어 불신과 무관심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종합적으로 1기부터 4기까지 정부조직의 정체성-명성-커뮤니케이션은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정부조직의 정체성은 전문성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는 것 보다 언론이나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 다시 말해, 정부정체성 변화가 외부 공중의 평가, 즉 명성과 커뮤니케이션에 크게 좌우 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정부가 2기부터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명성을 회복하지 못한 데에는 한국사회의 역사적인 배경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에서 민주화하는 과정에서 정부를 믿고 따를 수 있는 긍정적인 호감, 신뢰감 보다는 비판해야하는 대상이자 적대적인 관계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세월호 이슈 자체에 대한 국민의 감정이 특별했던 것도 이유로 보인다. 즉, 사망자의 대다수가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국민이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이슈적 특징이 있었다.
본 연구는 기존의 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명성관리 연구를 정부조직에 확대 적용하여 연구의 범위를 넓혔다는 점, 조직학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명성의 출발점이자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이론적 틀에 근거한 종합적인 분석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었던 세월호 이슈를 중심으로 내부 구성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하여 정부조직의 정체성변화와 명성, 커뮤니케이션과의 관계, 각 요소들이 어떠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변화해 나갔는지 탐색적이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데 그 함의가 있다. 이를 통하여 국가 전체에 영향력이 큰 정부조직의 명성관리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여, 국민과의 신뢰를 회복하는 정부명성관리의 실무적인 기틀을 마련하는데 기여하고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