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근대 한국 미션스쿨의 여성교육과 이를 통한 여성의 의식변화와 삶의 변화를 고찰한 연구이다. 구한말을 전후해 서구로부터 전래된 기독교 복음은 오랫동안 가부장체제하에서 고통받던 한국여성들에게 해방과 치유, 갱생의 메시지였다. 특히 개신교에 의해 설립된 근대 교육과 의료사업은 여성, 고아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했고 근대 교육의 이념을 수립하고 제도화했다. 미션스쿨과 여기에서 파생된 여성전용 병원, 여성교회는 '여성주의' 의식이 성장해 가기 위해 필요한 사회 공간이었다. 이러한 '여성의 공간'에서 발아된 여성들의 주체성은 스크랜튼을 비롯한 여선교사들의 존재에서 전통적 여성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역할 모델을 발견해 내면서 더욱 성장해 갈 수 있었다. 본 논문에서는 근대 교육기관이자 대표적인 '여성의 공간'이 된 이화학당과 정신여학교의 여성교육이 여성들을 '전통적인 여성' 인식으로부터 해방시켜 '여성주의 의식'을 갖게 하고 삶을 변화시켰음을 고찰했다.
이화학당과 정신여학교의 설립 배경에는 19세기말 미국 개신교 상황과 미국 개신교의 해외선교로 파송된 여성선교사들의 존재가 있었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한국 개신교의 수용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19세기말 미국 개신교의 상황과 해외선교에 대해 알아보고 한국에 여성선교사가 들어오게 된 배경과 여성교육이 어떻게 태동되었는가를 고찰했다. 미국 선교사들에 의한 한국 선교의 특징은 첫째, 중국, 일본과는 달리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복음이 수용되었고 한글로 된 성서의 번역과 출판이 이루어졌다는 점, 둘째,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고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한 간접선교였다는 점, 셋째, 여성선교사들을 통해 여성들에게 의료와 교육을 통한 복음이 전달되었다는 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미션스쿨에서 교육받은 한국 여성들은 여성의식과 민족의식, 주체성과 기독교정신을 통합해 나갈 수 있었다. 여선교사들의 초기 교육의 목적은 한국 가정을 향상시킬 주부와 여성교육을 담당할 교사, 그리고 헌신적인 의료인을 키워내는 기독교적 교육이라는 시대적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근대교육을 통해 발아된 '여성주의 의식'은 여성들로 하여금 전통적 여성상에서 벗어나게 하였고, 비판적 시각과 주체성을 자각하게 했다. 이러한 '초기 여성주의적' 의식은 이후 한국 여성의식이 '민족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 여성의식'으로 성장, 분화해 가는 모반이 되어주었다.
근대 여성교육을 통한 여성들의 삶의 변화를 보다 구체적으로 추적하기 위해 본 논문에서는 이화학당 초기 졸업생 박에스더와 김활란, 정신여학교 초기 졸업생 김마리아의 삶을 고찰했다.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는 자신의 전문성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도구로 선용하여 개신교 여성지식인의 역할 모델이 되어 주었다. 김활란은 한국 최초의 여성 박사이자 교육가로서 이화여전을 종합대학으로 성장시키고 사회운동가와 개신교 지도자로서 활동했다. 김마리아는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수학하고 교육하며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이들의 생애와 활동을 분석함으로써 미션스쿨의 근대 여성교육을 통해 한국 여성들이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일제 강점이라는 이중의 억압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분야에서 사회 활동을 해 나갈 수 있는 주체로서 자각해 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