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살은 지금 심각한 수준에 도달하였다. 또한 한국 사회 안에서 청년들이 사망에 따른 원인을 보면 1위가 자살이다. 이처럼 자살은 지금 청년들에게 있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자살에 대해서 대안을 내놓고 있으며, 각 사회 기간에서 각자의 기술대로 자살예방에 대하여서 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편의점 보다 많은 개신교가 자살 문제에 대하여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 교회에 청년들이 넘쳐나길 바라는 목회자들은 많아지고,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전도에 집중하여 힘을 쓰고, 교회의 성전 확장을 위해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위한 사역' 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작 교회는 교회 안에 있는 청년들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열정적'으로 교회에 '봉사'하고 '매일'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청년들을 교회에 일꾼으로 세우면서, 그들에게 교회를 위한, 교회를 향한 충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정작 청년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지금 준비해야 될 것들에 대해서는 교회는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회에서 말한 '청년페이, 열정페이'와 무엇이 다른지 알지 못하겠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돈'으로 인하여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라 생각한다. 그 사람이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여행하고, 무엇을 타고 하는 것들이 사람의 판단하는 기준이 된 것 같다.
교회는 사회적으로 청년들의 삶을 파악하고, 그들의 자살 문제를 파악해야 된다, 하지만 한국의 수많은 교회들 중 많은 교회는 청년의 삶, 즉 사회에서의 청년의 사회적 모습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 사회에서의 청년의 삶을 기도로 이겨내고,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은 올리버 예거스가 말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 그 어떤 때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변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너무 빠른 사회적 변화와 변화에 따라 계속적으로 자신을 바꿔나가야 되는 청년들이 존재한다. 이런 사회가 지금의 청년 실업, 청년 문제, 청년 자살 등 청년이라는 이름의 문제들을 만들어 내놓았다. 이런 사회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이버 상으로 자신의 인격과 정체성을 옮기면서, 오프라인에서의 '자신'이 아닌 사이버 상의 '자신'을 만들어 그 삶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받으면서 희열과 기쁨을 느끼면서 사회 안으로 들어와서는 불안, 두려음, 슬픔, 고통 등의 많은 심리적, 육체적 문제를 가진다. 이런 사회에서 편의점 보다 많은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교회는 가능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교회가 가진 교육을 통하여서, 사회에서 기독교적 가르침으로 삶의 해답을 찾고, 위로를 통해서 심리적 안정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소망을 가지게 되어 삶의 중요성을 알려줄 수 있다. 또한 각자에게 기독교적 삶에서 나아가야 될 방향과 목적이 있음을 교육을 통해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교회는 이런 가능성이 있음에도 '청년자살'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음을 현 사회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살'을 교리적으로만 문제를 제시하고, 정작 한 인간으로서 자살의 이유와 존중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청년들의 자살에 대한 아픔을 공유하며, 교회가 사회와 연계하여 청년자살을 방지하는데 앞장서는 시도가 시작되었으면 한다.
기독교 교육의 가능성을 말하면, 교회에서 하는 모든 교육, 참여 활동, 회복 등 교회에서 하는 모든 활동을 통해 기독교적 삶과 성격적 가르침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가르쳐주며, 가능성의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이 지금의 교회와 사회의 각 기관에서 기독교적 바른 가르침으로 삶에 대한 희망과 바른 인식을 잡아줌으로써 청년들의 자살을 교회가 예방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본 연구자의 연구를 통해서 청년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청년들이 지금 어떤 위치, 시선으로 사회를 살아가고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며, 자신의 가치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