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IMF 경제위기 이후 청년층을 분석하는 다양한 세대론들이 청년을 동질적인 집단으로 다룸으로써 성별과 계층과 같은 내적 차이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음에 주목하면서,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의 증대가 청년 여성들의 생애과정(life couse)의 한 부분인 "가족 실행"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그동안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와 여성의 지위에 관한 여성주의 연구들에서 취약 계층인 50-60대 중장년층 여성의 노동 문제를 주로 다루어져 왔다면, 본 연구는 청년 여성의 불안정 노동 경험이 "가족 실행"에 영향을 미치는 지점을 분석하고자, 노동 경험이 있는 20~30대 대졸 기혼여성들의 사례를 분석하였다.
먼저, 청년 여성의 노동시장 지위를 파악하고자 거시적 지표를 검토한 결과, IMF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재편은 청년층 일자리의 전반적인 질적 저하를 초래하였으며, 질 낮은 일자리에 청년 여성들이 주로 진입하게 되는 '청년층 일자리의 여성화'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청년 여성의 노동시장 지위는 고용안정·고임금이 보장되는 1차 노동시장으로의 진입 장벽과 성별임금격차, 고용불안이라는 열악한 위치에 놓여있었으며, 이는 성별화된 노동시장 구조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불안정 노동을 경험한 연구 참여자들의 "가족 실행" 과정을 분석한 결과, 몇 가지 유의미한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첫째, 불안정 노동을 경험한 청년 여성들이 자신의 노동 가치가 저평가 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시장 노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화되고,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에 대해 수용적 태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스스로 안정적인 독립을 이룰 수 없다고 인식한 청년 여성들은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은 욕구를 달성하려는 하나의 전략으로 "가족 실행"을 선택하였는데, 이는 노동시장 불확실성의 증가가 청년 여성의 "가족 실행"을 강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때 청년 여성들이 취하는 "가족 실행"의 특징은 사회안전망의 상당부분을 가족에 의존하는 한국의 가족주의적 복지레짐 하에서 원가족에 대한 의존성과 분리된 핵가족 지향성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개인의 분리 욕구와 원가족 의존성이 결합한 모순적인 "가족 실행" 전략이 추구되는 것은 '가족지향적 개인화(family-oriented individualizaion)'로 해석할 수 있다.
셋째, 청년 여성들이 가족형성기 탈취업을 결정하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는 경제적 보상이었으며, 자신의 소득과 직접 육아를 포기했을 때의 기회비용을 따져 탈취업을 선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노동시장 불확실성의 증대가 청년 여성의 노동 가치를 저평가하는 한편, 반대로 안정감에 대한 욕구와 '정서적 가치'에 대한 추구를 상승시켜, 결과적으로 여성들로 하여금 노동시장에서의 낮은 보상보다 양육을 통한 친밀성 보상을 선택하도록 유인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청년 여성들은 시장 노동에서 충족되지 못한 성취감을 자녀 돌봄 등의 비공식 노동에서 얻으려는 경향을 보였으며, 자녀에 대한 정서적 애착이 강화시킨 '어머니 노릇' 수행을 위해 성별 노동 분업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그동안 여성의 경력단절의 원인을 '출산과 양육'이라는 가족 영역에서만 원인을 찾아왔던 것에서 노동시장 영역의 문제로 확대하여 접근할 필요성과 초기 노동시장 진입에서 열악한 조건에 놓일수록 경력단절로 유인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청년층 일자리의 성별화된 위계 구조를 개선할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함을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