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한국 진보정치 재구성에 관한 연구이다. 2004년 총선을 통해 10석을 배출한 민주노동당은 한 때 20%대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한국 정당체제를 변화시킬 진보정당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원내진출 이후 당내 파벌대립의 격화, 소모적인 이념 논쟁, 노동운동의 사회적 고립 등 내외부적 도전을 극복하지 못하고 2008년 분당으로 이어졌다. 2011년 분열된 진보정치 세력은 통합운동을 전개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다수는 통합진보당으로 재편되었고, 소수는 진보신당과 무당파로 남았다. 2012년 총선이후 통합진보당은 또 다시 분당했고, 그 양태는 2008년 분당사태보다 더욱 격렬하고, 폭력적이었다. 이로 인해 한국 진보정치는 사실상 회생이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 등 사회적 위기는 진보정치 복원을 요구하고 있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우리사회의 모순이 한계상황에 직면했음을 의미하는 일종의 '마지막 경보'였다. 사고 발생원인과 구조과정에서 보여준 국가권력의 부패와 독선, 이를 견제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의회의 모습은 우리 정치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선거에는 이기는 여당과 아무 일 안 해도 제1야당은 유지하는' 현재 정당체제로는 한국 사회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의 카르텔, 양당제를 유지하는 강력한 기제는 시대착오적인 선거제도이다.
본 연구자가 제도에 주목하는 이유는 불비례성이 높은 현행 선거제도가 국민들에게 反정치 의식을 확산시키고, 기득권 세력은 이에 기대어 집권을 연장시킨다는 점이다. '1인 1표'만 되면, 또는 직선제만 되면 마치 제도적으로는 민주화가 달성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 '1표 1가치' 즉 득표가 의석배분에 정확히 환산되지 않는다면 선거를 할수록 민심과 거리가 먼 권력만 양산된다. 늘어난 사표만큼 정치의 사각지대는 넓어지고, 사회경제적 약자는 제도에 의해 정치적으로도 소외된다.
한편 제도는 기존 제도 수혜자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변화가 쉽지 않다. 따라서 제도개혁은 제도권 밖의 정치운동을 통해서 국민여론을 형성하고 제도권을 압박해 나갈 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주체와 담론형성이 선결조건이다. 노동과 시민사회 운동진영은 물론 연구자와 전문가 집단 등이 산발적인 문제제기 수준에서 벗어나 연대와 공동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국가모델로 성장과 분배가 조화되고, 승자독식·패자전몰의 폐단을 극복하는 복지국가를 설정한다면, 현재 기형적인 양당제로는 불가능하다. 다당제에 기초한 합의제민주주의가 선행 복지국가들의 공통된 정치체제이며 이를 가능하게 했던 선거제도는 비례성이 강한 선거제도와 결선투표제였다.
만약 2016년 총선에서 야권과 진보정치세력이 이러한 정치개혁에 합의하고,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관련 선거법을 개정할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민주화 투쟁 30주년에 실시되는 2017년 대통령 선거는 여론조사와 같은 '억지 사전 단일화' 방식이 아니라 유권자 모두가 '1차에서는 선택하고, 2차에서는 배제'하는 진심투표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고, 야권의 경쟁도 '죽기 살기'식 이 아니라 결선투표와 연정을 대비한 정책선거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차기 대통령 선거를 통해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닌 우리 정치의 근본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지는 않을까. 진보정치 재구성도 역시 이러한 정당체제 변화를 통해서 그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