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의 목적은 '가족실천(family practice)' 이라는 관점을 통하여 기혼 무자녀(child-free) 여성의 결혼과 출산, 가족의 현재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가족실천'이라는 관점은 '가족(family)'을 명사적이거나 고정된 모델로 인식하지 않고, 가족을 둘러싼 일련의 관계와 행위에 연관되어 있는 기대와 의무로 바라보는 개념이다. 이 관점에 입각하면,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둘러싼 제도·사회규범과 구성원 내의 상호작용이 동시에 분석 되어야 한다. 더불어 이 논문은 개인의 생애가 가족의 생애와 강력하게 맞물려 조직된다는 점에 착안하였다. 한국사회의 가족의미를 검토하기 위해서 사회재생산의 핵심적 과정이자, 성인기 생애과정의 주요한 관문으로 여겨지는 결혼(가족형성)-출산/양육-부모부양과 관련된 가족실천에 주목하여 연구질문을 구성하였다. 주요 연구대상으로 기혼 무자녀 여성을 선정한 것은, 제도 결혼 내부에서 출산과 부양의 문제를 둘러싼 가족실천을 분석함으로서 오늘날의 가족의미가 어떠한 변화 가운데에 있는지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연구 질문과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족구성 동기로서 제도 결혼은 결혼 적령기(연령)·순서·공-사 이분법·성역할 모델 등 결혼을 둘러싼 견고한 규범의 영향력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개인의 생애에서 결혼이라는 사건은 규범 구속력을 넘어 자신의 사회경험·원가족 경험·경제적 조건 등을 고려하여 선택된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결혼 내부에서 배우자와의 소통과 상호 존중에 기반한, 평등한 친밀감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평등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와 실천은 관계의 유지를 위해 상호간의 책임감이 더 커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자녀를 매개하지 않는 부부가족에서 성역할분업은 그 공식을 깨뜨린다기보다는 각자의 조건에 맞추어 상호 책임을 실행해야 한다는 당위의 차원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둘째, 출산/양육의 문제에 있어서 기혼 무자녀 여성은 가족 네트워크 내부의 압력을 크게 받고 있었다. 전통적인 대(代)를 이어야 한다는 개념,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된다는 응답들 속에서 아직 출산이 '여성출산'이 아니라 '가족출산'이라는 의미망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면화에도 불구하고 배우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구속받고 싶지 않다는 욕구나, 전형적인 부모/모성을 수행하는 주체가 되지 않겠다는 결심, 사회적 존재(개인)로 존재하고자 하는 욕구들이 무자녀 실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러한 욕구와 정체성을 바탕으로 무자녀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결혼과 출산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승인되는 '정상성'의 경로를 의심하고 회의함으로서 규범적인 생애과정에 변형을 가져오는 실천적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셋째, 전통적인 의미의 부양은 경제적/실질적 돌봄 모두를 포괄한다. 기혼 무자녀 여성들은 부모 부양에 있어서 자신을 경제적 부양자로 내면화 하는 정도가 높은 수준이었지만, 자신과 배우자가 실제 돌봄을 수행해야 할 일차적 돌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큰 부담을 느끼며 때로는 거부하고 있었다. 인터뷰 결과 이런 현상은 단지 돌봄 노동의 고됨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누구와 삶의 공간을 공유할 것인가, 가족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를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기획하고 결정하고자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식을 바탕으로 무자녀 가족 여성들은 자신의 노후 또한 어떻게 조직해 나갈 것 인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친밀감을 공유할 대상으로 가족 네트워크를 넘어서, 노년의 삶을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함으로써 노년을 삶의 의미를 더해가는 새로운 시기로 기획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노년에 대한 적극적인 상상과 준비를 하는 기혼 무자녀 여성들의 삶은 기존에 잔여적 삶으로 평가되던 노년의 의미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주체의 모습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자녀 가족 여성들은 출산을 하지 않는 결정적 이유로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다. 먼저 일-가족 양립과 관련된 법적·제도적 장치들은 현실에서 충분한 실효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또한 소비와 경쟁을 중심으로 고도화되어 있는 양육·교육시스템은, 가족 내 자원의 큰 몫을 교육에 집중하게 함으로서 가족의 삶의 질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출산과 양육은 노후의 생존과 교환되는 것으로 인식되며, 안정적인 노년의 복지를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