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운동의 일환으로 전례 개혁을 전개했다. 루터의 영향을 받고 루터를 지지한 독일 색스니 선제후 프레드릭은 종교개혁 예배를 실천하고자 한 교회를 건축했다. 이 교회는 독일 색스니 왕가의 본궁인 토어가우의 하르텐펠스 성내에 지어져, 1544년 10월 5일 루터의 집례로 봉헌된 토어가우 성교회이다. 이 교회는 루터교회와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첫 번째 교회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 시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교회의 건축 모델이 되어왔다.
이 논문의 목적은 종교개혁 시기 루터의 전례와 공간을 연구하여 루터교회를 중심으로 21세기 한국 교회를 위한 현대적 의미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주로 루터와 루터교회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있지만, 루터교회가 프로테스탄트교회를 시작한 모체로서 그리스도교 전체에 바람직한 교회 상을 세우는 일에 공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국내에서 토어가우 성교회를 대상으로 한 첫 번째 연구 논문으로서도 공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논문의 연구 주제는 "전례와 공간"이다. 첫 번째 연구 "전례"에서는 "종교개혁 시기 루터의 전례"를 전례 개혁사 측면에서 연대기 순으로 다룬다. 그 내용은 일명 "95개조 논제"인「사죄(면죄증)의 힘과 유효성에 관한 논쟁」(1517년), 종교개혁 삼대 논문(1520년), 여덟 편의 연속 설교(1522년),「공중 예배 의식에 관하여」(1523년),「비텐베르크 교회를 위한 미사 및 성찬식의 순서」(1523년),「독일 미사 및 예배 순서」(1526년), 그리고 기타 전례 문서들(1518-44년)이다. 이 논문은 전례사의 정치적 관련 연구로 "슈말칼드 동맹"(1531년)과「슈말칼드 신조」(1537년)를 다루고, 전례신학적 입장에서 루터의 전례신학을 연구한다. 이를 통해 세계 루터교의 주요 미사들의 전례 순서와 한국 루터교 예배의식문과 예배서 발전사 및 전례 순서들을 비교 연구하여 전례 파급과 발전을 다루었다.
이 논문의 두 번째 연구 주제인 "공간"에서는 토어가우 성교회를 중심으로 연구한다. 이 성교회는 루터와 루터의 지지자들 및 색스니 왕가의 성원을 받아 색스니 선제후 존 프레드릭에 의해 건축되었다. 당시 토어가우에는 성 마리엔 성당과 성 니콜라우스 성당 및 성 프란시스코 성당 등 장대한 중세 고딕 성당들이 여러 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 측의 루터 진영은 아주 작은 예배당으로서 이 교회를 건축했다. 예배당 내부 크기는 아래쪽 부분의 가로 폭 길이 10.26m이고 세로 폭 길이 23.35m로 총 239㎡ 정도이다. 중세 고딕 성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파사드, 종탑, 성단소와 지성소 그리고 중앙 제대도 없다. 거기에는 주님의 성찬 식탁으로만 사용하는 자유형 제대, 제단화가 조각된 제단가구, 그리고 작은 설교대가 성가구의 전부이다. 출입문도 가정집 출입문 정도의 크기이다. 그러나 이 성교회 건축 공간에는 종교개혁을 이끄는 루터의 전례신학과 사상이 스며들어 있다. 이것은 제대를 받치는 천사 기둥, 주님의 만찬 조각이 새겨진 제단화, 성서 사건을 종교개혁의 삼대 원리이며 모토인 "성서만으로, 믿음만으로, 은총만으로"를 통해 스토리텔링하고 있는 설교대 부조 그림, 회중석 벽에 걸린 바알사제들을 물리치는 엘리야 선지자 이야기의 성화,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기억하도록 하는 대리석 조각으로 만들어진 출입문 등에서 드러나고 있다. 중세 스콜라 신학은 영광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영광의 신학을 추구했다. 반면에 루터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십자가의 신학을 말했다.
성교회는 건축 때부터 지금까지 16세기 종교개혁 시기 루터의 전례신학과 사상을 압축한 저장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는 이를 연구하기 위해, 선행 연구사와 현지 조사 연구를 병행하였다. 독일 토어가우 현지 조사 연구를 통해 성교회의 외부, 내부, 제대, 설교대, 출입문 등 전례와 공간 및 도상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과 신학적 의미를 밝혔다. 예를 들어 지붕 창문 탑의 기하적인 곡선 형태처럼, 토어가우 성교회는 당시 유행하던 북부 독일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한 점 등이다. 성교회는 당시 웅장한 고딕 성당들에 비해 결코 화려하지도 장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런 점에서는 매우 빈약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으로써, 루터는 거대한 옛 집인 고딕 성당과 같은 기념비적 건축물을 세우지 않았다. 종교개혁의 전례와 공간의 실제적 근저를 이루는 것은 세례 받은 모든 신자들의 만인사제직 신학이다. 루터와 그의 종교개혁 진영은 참된 하나님 말씀과 성례전을 집행하는 교회, 즉 백성을 위한 새 집을 지었다.
오늘날 세계는 최첨단 산업화와 신자유주의 경제를 바탕으로 사회 여러 분야에서 물질주의와 성공주의 또는 제일주의 및 대형주의에 빠져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그리스도교라도 예외일 수 없다. 이 논문은 오히려 한국 개신교의 예배와 교회 공간에서 이런 세속주의를 엿볼 수 있다고 비판적으로 생각한다. 교회는 마치 중세 교회의 황금시기처럼 부패하고 타락하여 초대교회의 본질을 상실하고 있다. 필자는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교를 위해 16세기 종교개혁자 루터의 전례와 거룩한 공간의 의미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논문은 결론적으로 "주님의 성찬 식탁으로서", "만인사제직을 실천하는 교회로서", "신학적·목회적 의미부여 해석으로서", "공동 만남의 새집으로서" 바람직한 현대적 의미를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