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정치개혁은 권위주의 청산과 더불어 국민의 참정권 보장을 목표로 의회·정당·선거제도의 개혁이 추진되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 직선제를 통하여 역사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으며 풀뿌리 민주주의라 부르는 지방선거가 정착되었다. 또한 진보정당이 제도정치에 진출하는 정치적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매우 많다. 민주화 이후 투표를 포기하는 유권자가 증가하였고 의회와 정당에 대한 불신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국민의 80% 이상이 정치를 불신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정치에 대해서 실망한 국민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억압하였던 과거 권위주의 통치자에 대한 향수를 불러오고 있다.
이 연구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현상과 원인에 대한 비판적 연구로서 여러 원인 중에서 '민주화 이후 추진되었던 정치개혁'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온 한 원인으로 작용하였음을 밝히고자 하는 연구이다. 즉, 민주주의의 위기의 원인은 민주화 이후 정치개혁이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하여 바람직한 방향과 내용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오히려 반정치적·반정당적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인민의 지배'라는 정치적 이상(理想)을 추구하는 민주주의를 현실세계에 실제적으로 반영하는 방안은 제도적으로 '국민의 정치 참여'를 최대한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와 같은 적지 않은 인구 규모와 복잡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국민이 직접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민주주의 국가 대부분은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대의제의 핵심적인 제도는 의회와 정당과 선거이다. 따라서 '국민의 정치 참여'는 의회·정당·선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민주화 이후 정치개혁은 의회·정당·선거의 개혁이며 궁극적으로 '국민의 정치적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였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정치개혁은 '국민의 정치적 참여'를 확대하기 보다는 오히려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치개혁이 추진되었다. 이 같은 정치개혁이 추진된 이유는 정치개혁의 핵심적 목표가 '국민의 정치적 참여'에 있지 않고 현상적 문제였던 '고비용 저효율 정치구조'의 타파에만 머물렀기 때문이다. '고비용 정치구조 타파'를 위해서 선거규제를 강화하고 정당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선거법과 정당법을 개정하였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정치적 참여'의 방식인 선거와 정당이 제약되고 축소되면서 민주적 가치인 '참여' 역시 위축되고 축소되었다. 대표적으로 규제중심적인 선거법, 지구당 폐지, 국회의원 정수 축소, 지방선거 정당참여 배제 등이다. 이는 민주정치의 발전에 反하는 반정치적인 정치개혁이라 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정치개혁이 반정치적·반정당적 성격을 갖게 된 원인은 반정치적·반정당적 메커니즘에 의해서이다. 반정치적·반정당적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서는 냉전반공보수체제와 신자유주의가 있다. 냉전반공보수체제는 정치개혁의 범위와 한계를 규정하는 요소로서 '국민의 정치참여'를 제약하고 배제하도록 하였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성장을 위한 정치개혁이라는 경제 우위적 가치관으로써 정치개혁의 가치를 '효율성'과 '생산성'으로 두게 하였다. 이러한 반정치적·반정당적 요소가 정치개혁의 기본적인 방향과 내용을 규정하는 가운데 언론의 반정치적 담론과 정치인의 반정치적 포퓰리즘이 영향을 주면서 정치개혁의 반정치성과 반정당성은 반복적이며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구조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