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여성들의 '손 작업' 활동이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으로 창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부에서 사회적경제 영역을 활성화해 20년째 50%대에 머물고 있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고자 하는 정책 기조와 맞물려 있다. 그러나 기계화된 대량생산의 시대에 노동집약적이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손 작업을 통해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여성들의 손 작업 사회적경제가 고용 창출이라는 단순한 목적을 넘어서, 어떤 비전과 방향 속에서 실천될 때 대안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손 작업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12명의 종사자와 전문가를 심층 인터뷰하고 관련 문헌을 검토했다. 그 결과, 이 연구에서는 J. K. 깁슨-그레엄의 '공동체경제' 개념을 여성들의 손 작업 사회적경제의 비전으로 두고, 다음의 다섯 가지 의미로 재구성했다. 첫째, 손 작업을 실천하는 여성들은 자기변혁의 미시정치 혹은 윤리를 통해 새로운 경제를 만드는 '색다른' 경제주체들이다. 이들은 경력단절 여성,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실험하는 청년들, 그리고 도시농부와 요리사들로서, 그동안 경제의 주체라기보다는 소비의 주체로, 또는 주류 경제 내 주변인들이었지만 공동체경제의 주체가 되고 있다.
둘째, 손 작업 사회적경제의 현장은 삶의 총체성을 회복하는 호혜와 연대의 공동체이다. 호혜를 통해 사회적 자본을 축적해나갈 때 기존의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바로 사회적경제에 요구되는 비전이다.
셋째, 다른 삶의 방식을 구성해나가는 공간이다. 이 연구에서는 자급자족을 지향하는 커뮤니티, 대안적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커뮤니티, 일과 생활의 균형잡힌 삶을 추구하는 커뮤니티, 그리고 문화적 대안으로서의 커뮤니티 사례로 나누어 분석했다.
넷째, 여성주의적·생태적 가치가 공명하는 곳이다. 여성들의 부불노동(unpaid work) 영역에 상당수 포함되는 손 작업의 특성상, 그리고 인간과 자연 간의 상호의존성을 전제로 하는 공동체 경제의 속성상 여성주의와 생태 감수성은 손 작업의 전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손 작업 사회적경제는 여성들의 살림(oikos)/경제를 가시화하는 공간이다. 여성들의 비자본주의적 활동이 대안적 시장, 대안적 지급, 대안적 기업으로 전환되면서 다양한 모습의 살림/경제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손 작업 사회적경제를 위와 같이 재의미화하고 새로운 담론으로 구성하고자 한 이유는, 손 작업 사회적경제의 비전이 자본주의 기업과 마찬가지로 경쟁과 이윤 창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급적 공동체경제로서의 비전을 가질 때 보다 지속가능할 수 있음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비전이 현실에서 재현(representation)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의 생산과 소비를 윤리적 지향 속에서 재조직화하고, 돌봄, 교육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분야별·기능별 사회적경제조직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동시에 이들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사람들의 전체적 삶이 그 안에서 해결되는 네트워크, 즉 "연대와 호혜의 공동체"가 구축될 때 산업자본주의의 억압과 소외로부터 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이 가능해진다. 그것은 인간의 삶에 가장 필요한 물건과 먹거리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손 작업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