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交友論』에 대한 기존의 많은 연구들이 비종교적 관점을 보였던 것과 달리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이 책이 담고 있는 우정론을 고찰해 보았다.
그리스도교 우정론은 신적이며 인간적인 우정으로, 이 둘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는 하느님과 우정을 나누고 하느님 안에서 동료 인간들과 우정을 나누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스·라틴 세계의 우정론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고전적 우정론은 벗에 대한 차별적이고 선호적인 사랑을 특징으로 하는데, 그리스도교 우정론에서는 이러한 선호적 사랑이 아가페적인 보편적 사랑으로 성장하는 씨앗이 된다고 말함으로써 이를 발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예수회 사제로서 리치는 우정에 관한 세속의 가르침과 종교의 가르침을 서로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물론 이 책에서 그리스도교 고유의 우정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우정에 대한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본질을 잃지 않는 상태에서 우정론을 전개하고 있다.
사비오 대주교는「A Sapiential Synthesis of Faith and Reason: From De Amicitia of Matteo Ricci」를 통해『交友論』을 그리스도교 신앙과 유교적 이성의 종합으로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다. 그의 이와 같은 논의는『交友論』을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혔다. 그에 따르면, 벗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시작된 우정은 이성의 지침에 따라 충실, 믿음과 같은 다양한 진리와 선을 거쳐 우정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로 향한다. 본고는 사비오 대주교의 이러한 논지를 바탕으로 그의 논문에서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은 측면들에 대한 발전적인 논의를 전개하였다.
리치는 벗이 영혼을 함께 하는 존재라는 서양의 우정론을 소개하면서 영혼을 마음(心)이라는 말로 번역한다. 마음은 벗과의 우정이 시작되는 곳으로 의(義)와 인(仁)의 덕을 실천하는 주체이다. 리치는『天主實義』에서 仁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愛天)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으로 설명하는데, 이러한 덕의 실천을 통해 벗과의 조화로움(和)에 이른다.
리치는 이와 같은 우정의 인간적 측면과 함께 우정의 신적이며 초월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말한다. 인간에게 벗을 주는 주체로서 상제(上帝)에 대해 말하는 격언 16과 56은 벗과의 우정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交友論』에서도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상제께서 벗과의 사귐을 주신다는 "上帝命之交友"(격언16)는 하늘이 준 것을 일러 성이라 한다는『中庸』제1장 "天命之謂性"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리치는 하늘로부터 비롯된 性의 자리에서 交友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벗과의 관계가 인간 존재의 중심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정은 두 벗이 함께 성장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열도록 위로부터 받은 사명(使命)이다.
이처럼『交友論』이 전하는 우정에 관한 그리스도교 인간학은 하느님께서 주신 벗을 사랑하는(愛人) '부름과 응답'의 인간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리치는『交友論』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愛天) 응답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적응주의 정책의 첫 시도로서 하느님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한 이웃 사랑의 씨앗을 뿌렸다고 평가하는 것이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