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56~)의 '수행성(performativity)'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 퀴어 영화에서 재현되는 젠더 이미지들을 분석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주체 설정의 폭력성이 매체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재현되는지 살펴보고, 전복적인 젠더 수행을 하는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이들의 전복적 젠더 수행이 어떻게 정형성을 파괴하며 이러한 정형성의 파괴가 어떤 의의를 지니는지 논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주디스 버틀러의 수행성 개념을 '가변적 주체', '수행성', '패러디(parody)와 드랙(drag)'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정리한 후, 분석 대상으로 선정한 27편의 퀴어 영화 대부분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젠더 이미지를 추출하고 논의에 맞게 분류하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 영화들 중〈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3)〉, 〈메종 드 히미코(2005)〉, 〈나쁜 교육(2004)〉 세 편의 퀴어 영화를 버틀러의 수행성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하며, 보편성을 파괴하는 전복적인 사례들에 대해 논의한다.
버틀러는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의 전통적인 구분법에 저항하며, 또한 자율성과 일관성을 주축으로 하는 기존의 주체 개념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버틀러는 행위 속에서 가변적으로 구성되는 행위자, 즉 호명에 완전히 복종하지 않고 잉여부분을 둠으로써 완전한 복종도 완전한 저항도 아닌 복종을 하는 주체를 이야기하며 근대적 주체 개념의 해체를 지향한다. 주체의 존재를 전제하는 퍼포먼스(performance)와는 달리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되는 반복의 과정인 수행성(performativity)은 주체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는다. 주체는 고정적이고 완결된 상태로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 가변적으로 구성되며,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 중에 작동하는 것이 반복적인 수행이다. 여기서 버틀러는 다르게 반복하기를 중요하게 본다. 기존 구조를 모방하되 원본성을 조롱하고, 권력에 속하지만 권력의 이분법을 뒤흔드는 문란한 복종이나 비복종의 방식으로 논의한다. 또한 드랙과 같은 패러디적 수행은 수행자의 육체와 수행된 젠더 사이의 분열을 강조함으로써 모든 젠더 정체성의 모방적 본성을 폭로한다.
버틀러에게 있어서 젠더는 패러디적인 속성을 지닌다. 모방의 대상, 원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원본이 아니라 이상적인 관념의 패러디에 불과할 뿐이라면 원본에 우위를 두는 것은 무의미하다. 남성/여성의 이분법 자체도 실상은 남성성/여성성이라는 관념, 즉 진정한 남성이나 진정한 여성이라는 이상적인 관념만이 존재할 뿐이다. 특히 매체에서 재현되는 젠더 이미지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규범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규범에서 벗어난 존재들까지 규범 내부에 포섭시키곤 한다. 예를 들어 퀴어 주체의 젠더 수행의 경우에는 퀴어라는 속성 자체의 전복성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퀴어 영화에는 비전복적인 이미지가 많이 존재한다. 일탈적이고 비주류적인 이미지도 매체 안에서 계속 반복되다 보면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이미지가 정형화되는 것은 아니며, 정형화된 이미지를 벗어나 전복적인 수행을 하는 인물들은 '트러블'을 일으키지만, 이러한 트러블은 그 자체로 강력한 행동이 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퀴어 영화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근대적 주체 개념의 폭력성은 퀴어 주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폭력의 문제, 에이즈 문제 등 윤리와 인권에 관한 문제도 포함되며 더 나아가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사회 각층의 소수자, 그리고 언제라도 배제될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모든 주체들, 즉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기에 버틀러의 논의가 일으킨 젠더 '트러블'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 자체로 큰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