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한국 사회에 범람하고 있는 해외봉사활동 관련 담론들이 성공스토리에 점철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해외봉사활동의 담론 속에서 왜 한국의 해외봉사활동은 실패하지 않는가의 의문을 풀고자 연구자는 필리핀 마닐라 톤도 Z센터에서 벌어지는 한국의 단기 해외봉사활동에 참여 관찰을 실시하였고 활동의 참가자와 현지인들의 심층 인터뷰하였다. 해외봉사활동이 실패하지 않는 이유를 찾기 위하여 해외봉사활동의 주체들이 이야기하는 성공담론이 무엇인지 찾고, 성공담론의 생산과정에서 드러나는 특징들을 교차 분석하였다.
해외봉사활동의 참가자들은 '봉사자'와 '세계시민교육을 받는 사람'이라는 두 개의 자리를 넘나들며 타인에 대한 윤리적 책임 결여가 정당화되는 조건에서 가난을 체험한다. 참가자들은 가난에 대한 제한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행복하니 가난해도 괜찮다'의 담론을 만들어내는데 그들에게 있어 이는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 사회에 대한 성공적인 저항으로 간주되어 가치를 획득한다. 해외봉사활동을 수행하는 시혜자로서의 헌신과 기여에 대한 인정 획득은 참가자들이 성공담론을 생산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허나 참가자들의 행위에 대한 성패 판단이나 평가는 현지인들보다 경제적 위계의 상위에 위치하는 참가자들 자신에 의해 이루어지며 인정의 유예와 회피의 전략을 통해 구조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해외봉사활동 수혜자들의 성공담론은 해외봉사활동에서 맡은 역할, 참가자와의 관계, 경험의 성격에 따라 다소 상이하게 나타난다. 해외봉사활동이 수반하는 경제적 이익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Z센터 소속의 사람들의 경우, 센터 운영을 위한 경제적인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 할 수 있다는 데에 해외봉사활동의 의미를 찾고 있다. 동네 주민들은 해외봉사활동을 통해 자녀들의 교육 후원자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었는데 그 가능성의 실현은 주민들 입장에서 획득할 수 있는 최대치의 성공을 의미하고 있었다. 동네 청년들은 문화자본 축적이라는 측면에서 해외봉사활동이 그들 자신에게도 유의미한 경험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경제적 안정이라는 공동체의 목표에 순응해야 하는 상황과 이에 따른 일방적인 대상화에 장시간 노출되면서 청년들 사이에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내재된 억압적인 아비투스(habitus)가 생성되었다. 이는 정체성의 상실, 나아가 주체성의 상실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외봉사활동이 생산하는 성공담론을 분석한 결과, 해외봉사활동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참가자의 성공을 담보로 현지인의 성공이 달성되는 해외봉사활동의 지배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구조적으로 현지인들은 생존과 연관되어 있는 그들의 목표, 곧 경제적 자원 확보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참가자들의 요구에 호응해야하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실패를 말할 수 없는 해외봉사활동 주체들의 특수성에 있다. 해외봉사활동의 이해관계자 어느 누구도 자신의 성공을 위협하는 실패에 대하여 이야기하려 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는 실패의 담론 생산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경제적인 위계를 바탕으로 구축된 지배 이데올로기를 내재한 한국의 해외봉사활동 구조를 감안할 때, 현재 우리가 이야기하는 해외봉사활동의 성공은 진정한 의미의 성공으로 평가될 수 없다는 것이 연구자의 견해이다. 실패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부재한 상태에서 달성된 자기만족적인 성공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을 통해 앞으로 해외봉사활동이 성공보다 가치 있는 실패와 조우하고 변화되어야 함을 연구는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