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현실은 부조리absurdity로 가득하다. 가련한 인간 실존은 "알 수 없음"이라는 부호 속에 잠겨 있을 때가 많다. 악은 역사 안으로, 우리네 일상 안으로 돌출해 온다. 도대체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전능의 날개 그늘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알고 싶었다. 전능 하나님이 동화적 환幻에 불과했는지, 아니면 우리가 전능의 의미를 헛짚고 살았는지를. 그래서 나는 란츠만의 다큐멘터리 "쇼아Shoah"를 따라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아우슈비츠를 가 보았다. 그곳에서 엘리 위젤과 프리모 레비를 만났다. 안식일도 마다않고 밤낮으로 가스실을 가동시키는 야훼 하나님을 향해 나도 빈주먹을 휘둘렀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법정에 세우는 것도 보았다. 레비와 까뮈가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위젤은 가슴이 찢어져라 하면서도 계약을 파기한 하나님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있었다. 상처 입은 요나스는 하나님의 전능은 없어 마땅하다고 했다. 베이유도 십자가만으로 충분하니, 전능이니 하는 허튼소리 그만하자고 했다. 사람들은 법정에서 하나님의 무능에 대해 수런거렸다. 그 무리 가운데 본회퍼와 몰트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조금 달랐다. 약해야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은 약함으로 우리를 돕는 분이라고 했다. 희망이 느껴졌다. 이제야 하나님은 현란한 전능의 갑옷을 벗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알몸은 우리와 함께 고난당하느라 만신창이였다. 그 모습에서 하나님의 뭉클한 모성이 느껴졌다. 줄리안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머니라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만히 보니 그리스도는 우리네 어머니들을 빼닮았다.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하며 못난 자식 걱정에 가슴이 너덜너덜해진 이 땅의 어머니들과 똑같았다. 아둔한 내 가슴에 한 가닥 광휘가 스쳐갔다. 아, 어머니 하나님은 전능하시구나, 그 사랑이 참으로 전능하시구나!
이 논문은 아우슈비츠의 좌절을 딛고 하나님의 참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전능을 터무니없이 잘못 알고 있었다. 전능은 장악하는 것으로서의 힘이 아니라 사랑과 연결되어야 마땅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속에 오열하는 이들 결에 사랑의 전능자가 계시다. 정말, 이런 살가운 위로를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