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혼인 관계를 살펴보면 위기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심화된 내적 인격적 갈등이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부부들은 결과적으로 나타난 현상에만 집중할 뿐 위기의 근본원인을 파악하는 것을 멀리 한다. 따라서 부부 혼인관계의 위기 분석에 있어 “무엇이 이 혼인을 위기로 이끌었는가?”라는 원인 분석에 집중을 하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해결 방법의 일환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존재의 진리를 마주보게 한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인간학적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계시적 관점에 따라 '하느님의 모상'(이마고 데이, Imago Dei)으로 창조된 존재이다. 그렇다면,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세기 1장 28절의 말씀은 인간의 능력과 지배의 사명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소명은 지구상의 동 식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에 있다. 그러나 피조물을 지배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존재방식의 유지이다. 즉 생식자로서 다시 말해 부부로서 존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담의 갈비뼈에서 만들어진 하와의 이야기를 담은 창세기 2장은 여자와 남자가 혼인을 통해 생식자로서 함께 존재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묘사한다.
혼인한 부부는 자기 자신뿐 만아니라 상대방 배우자를 하느님의 모상으로 인식 한다.그 결과 하느님의 모상 안에서 부부관계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부는 상대방을 단순히 생식 또는 쾌락을 위한 도구로 인식하여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인 인간에게 세상을 지배하는 능력과 사명을 주셨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인간은 동물과 같이 한시적이며 제한적 존재이기도 하다(창 1,29). 결코 인간은 이 세상과의 관계에서 역사의 영원한 주인공이 아닌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 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느님 모상'과의 관계성 안에서 혼인과 인격주의, 즉 인격간의 친교로서의 혼인을 이야기 한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바라보는 인간의 친교는 인간의 내적 상태인 '고독'(창 2, 18)에 대한 관점, 그리고 전 인격으로서의 인간을 '성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고유한 시각을 대표적인 특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관점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친교적 관점을 보다 확장시켜 인간관계에 더 중점을 두며, 현대 사회에서 현상적으로만 이해하는 인간의 본성적 고찰에 재고를 권한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본 논고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상-부부에게 성은 '다름'의 근거이나 결코 '차별'의 근거가 아니다-에 동의한다. 즉 현대 부부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창조주 하느님께서 지으신 '시원적 인간'의 그 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현대의 역사적 인간이 비록 '원죄'의 상태에 들어 있어 시원적 인간으로서의 본성이 가려져 있지만 마음의 내적 소리에 귀 기울이면 그 '시원적 인간'의 의미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역사적 인간에게도 그 의미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바로 혼인의 성사성을 통해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은 인간의 인격적 특성인 '성의 혼인적 의미'가 사회에서 제도화 되는 모습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혼인에서 남녀의 관계를 성적관계로 축소해서 보지 않는다. 교황은 혼인제도를 통해 인간은 사회 제도 안에서 자신들의 관계를 정당화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기혼 부부들은 삶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혼인서약을 할 때의 초심을 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들은 다른 신혼부부들이 선언하는 혼인 서약을 통해 그들의 혼인이 갖는 성사성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라 본 까닭이다.
본 논고는 현대 부부관계의 위기극복을 이성적 윤리관이 아니라 인간의 초월성에 입각한 그리스도적 신앙의 윤리관에서 찾는다. 그러기 위해 부부는 자신의 내적 소리를 듣고 이에 따라 양심 앞에서 가치전향을 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부부는 자신들의 앞에 닥친 고통과 위기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임을 깨닫게 된다. 고통을 통한 사랑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복종과 순종의 원형이다. 고통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실현 하셨듯이 위기의 부부 또한 사랑의 다른 이름인 고통과 위기를 통해 종말에 이르러 부활할 미래를 기다려야 한다. 욥기에 의하면 고통은 죄의 대가나 형벌이 아니다. 따라서 부부는 인간의 근원성에서 출발한 사랑을 통해 위기를 극복함으로써 이 지상에서 하늘나라의 행복을 완성해 갈 수 있다. 여기에서 사랑은 육체적, 정신적 사랑을 모두 포괄한 것이다. 부부는 남편과 아내로서(남성과 여성으로서) 이와 같은 사랑을 표현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능력은 고통을 통한 부활의 동참을 가능하게 한다. 바로 여기에서 결혼 불가해소성이 그 의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인격주의는 계시적 진리 안에서 인간 정체성의 근원을 탐색함으로써 출발한다. 따라서 본 논고는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 놓인 인간 삶의 방식을 강조함을 주목적으로 한다. 더불어 이 논고는 현대의 이성적 사고의 법칙에 물든 인간이 어떻게 진리를 만나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를 찾는 것을 차선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