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사상과 중국 고대 철학자인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그들 사상의 핵심 개념인 초탈(超脫)과 무위(無爲)에 초점을 맞춰 비교하고 있다.
이 작업을 시작한 동기는 에크하르트와 노장이라는 양 사상 사이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놀라운 유사성에 대한 흥미로운 발견 때문이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신학자로서보다 중세의 신비가로 더 잘 알려진 사람이며 또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인물로 간주되는 사상가이다. 신비가들이란 일반적으로 이성적 사유를 초월하여 신 안에 휩싸여 있고, 세상과는 격절되어 고독과 침묵 속에만 머물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려진다. 하지만 에크하르트는 이러한 것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세상과 인간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며 우리에게 하느님 안에 있는 세상과 마찬가지로 세상 안에 있는 하느님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그는 정신과 육체에 있어서 어떠한 이원주의도 부정하기에 그에게는 영성적 삶이 결코 일상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영성적 삶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깊이 뿌리고 내리고 있는 토양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의 요지(要旨)는 하느님께서 아들을 낳으시는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심오한 일치라고 말할 수 있다. 에크하르트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성(神性)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가르침 안에 등장하는 초탈의 개념이다. 신성과 초탈의 양 개념은 에크하르트 사상의 모든 차원을 지탱하는 본질적인 두 축이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에크하르트에게 신성은 궁극적 실재요 만물의 근원이다. 신성의 세계 안에서 모든 만물과 삼위로서의 하느님마저 다른 것들과 구별될 수 없는 순수하고 절대적인 '하나'에 용해된다.
Abgeshiedenheit 라는 용어는 초탈, 버리고 떠나기, 무심 등 여러 가지 단어로 번역될 수 있지만 Abgeshiedenheit 를 표현하는 그 의미에 있어서는 단어들 사이에 차이가 없어 보인다. 에크하르트는 초탈이란 순수한 무(無)를 목표로 한다고 말하며, 또 만약 어떤 사람이 피조물이 신과 어떠한 유사성을 지닐 수 있는 한 신과 같아지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오직 초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신성과 초탈의 관계는 노자와 장자 철학의 두 핵심 개념인 도와 무위의 관계와 유사하다. 전통적으로 도가의 창시자로 알려진 노자와 장자는 도를 모든 존재의 원천이자 궁극의 목적이며 만물의 근원이 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노자가 그의 책 『도덕경』에서 사용한 무위라는 용어는 단지 글자그대로 행위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나 조작이 없는 행위로서 도와 조화를 이루는 행위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무위란 초탈과 신성과의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도의 행위양태이다.
신성과 도는 특히 세상에 깊게 내재하고 있고 그 안에서 현상계와 본체계가 나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궁극적 실재로서 신성과 도는 만물을 낳고 만물을 키우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온 만물을 지배하려 들지 않고 단지 무에 이르도록 자신을 비울 뿐이다. 신성과 도는 만물이 거기에서 태어나는 근원일 뿐만 아니라 만물이 거기로 돌아가는 근원이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신성과 도가 모든 점에서 서로 일치하는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 연구는 노장과 장자 그리고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에서 동양과 서양의 사상을 연결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제 한 종교나 하나의 사상이 진리를 독점하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고 현대 사회는 갈수록 다원화 되어 가고 있다. 또한 과학과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은 인간의 정신으로부터 영성적이고 신비적인 영역을 빼앗아 왔다. 이러한 상황아래서 사상적 혼란을 겪고 있는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어 가고 있고 그 결과로서 많은 이들이 위안을 얻기 위해 알콜이나 약물중독에 점차 빠져들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신 안에 영성적이고 신비적인 영역을 회복하는 것이다. 노장과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우리의 일상의 삶 안에서 영성과 신비의 영역을 발견하도록 우리를 돕는다. 현대의 대안적 영성으로서, 노장과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우리에게 인간의 정체성을 재규정하여주고 우리가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