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후반 이래의 전세계적인 지구화(globalization)의 꾸준한 진전은 해외 이민의 형태의 변화에 따른 이민자의 지향과 정체성을 바꾸어 놓고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이민자들은 모국과의 단절적인 관계 설정을 전제로 이주국 일국의 틀내에서 새 사회에 대한 동화와 적응을 기본 지향으로 하며 삶의 형태를 구성해왔다.
반면 지구화 시대의 새로운 이민자들, 즉 트란스미그란트(transmigrant)는 이주국의 제반 제도들에 통합됨과 동시에 모국사회와 국경을 가로지르는 초국적 활동을 증대시키며 초국적 사회네트워크(transnational social networks)를 형성하며 꾸준히 유시키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는 초국적 방법론(transnational approach)에 기반해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이같은 트란스미그란트의 초국적 정체성, 일국적인 국가관의 변화 조짐, 개인적인 특징, 향후 이민자들의 성격과 전망에 연구 초점을 두고 있다. 이들 새로운 사회집단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개별 생활사 중심의 심층 인터뷰가 실시되었다.
본 연구는 새로운 사회집단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개별 생활사 중심의 심층 인터뷰를 실시한 가운데 연구의 대상은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러시아 극동지역 출신의 한국계 러시아인들로 삼았다. 주로 러시아 사할린 출신의 이들은 1990년대 중·후반이후 하나의 이민 흐름을 만들며 한국으로 이주해 왔다. 이들은 주로 일제 식민지 시기 사할린 정착 한국인들의 2세대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주 배경은 페레스트로이카의 혼동기를 거친 뒤 1990년대 러시아의 경제위기에 따른 일반적인 이주민들의 대응전략과 기본적으로 관련을 맺는다.
하지만 초국적 정체성의 측면에서 볼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을 드러냈다.
첫째, 모국사회에서 부모세대의 시민권의 제한은 후속세대의 유동적인 정체성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1세대의 무국적 유지는 2세대의 성인기 까지 전수됐으며 한국으로의 이주 열망은 초국적인 삶의 형태로 그대로 이어진다.
둘째, 모국사회와 이주사회의 차별의 경험은 상이한 형태로 나타났으며 이같은 다층적 차별 경험은 초국적인 유동적 정체성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복합적 차별 경험은 양국 사회 모두에서의 영구적인 정착의지를 동요시키고 있다.
넷째, 양국 사회에서 공히 진행되는 경제적 불안정은 어느 한쪽 사회로의 안착 조건도 만들어주고 있지 못하고 있다.
한편, 트란스미그란트의 초국적 삶을 유지시키는 기제들은 초국적 가족관계, 송금, 정기적이거나 비정기적인 왕복 이동,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들이다. 이들은 3세대의 양육비 충당과 생계유지를 위한 초국적인 가족의 형태를 기꺼이 수용하고 있다. 2세대의 한국이주와 3세대의 러시아 잔류가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초국적 가족이다. 이같은 가족 형태는 3세대가 완전한 독립세대를 구성한 뒤에도 지속된다. 하지만 2세대와 달리 3세대는 한국으로의 이주열망이나 동기를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초국적 기제들 가운데 특히 주목할 대상은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들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의 값비싼 유선전화는 저렴한 비용의 실시간 영상통화로 대체되고 있는데 이는 트란스미그란트에게 모국 사회와의 거리감을 줄여주고 향수를 반감시키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이를 통해 트란스미그란트는 국경을 가로질러 동일한 하나의 세계에 동시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일상적 감각을 부여받게 된다.
이들 트란스미그란트는 지구화 자체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민족국가들이 급작스레 해외이주민들에 대한 국경의 문을 닫는 돌발적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질적으로 다양화되고 양적으로 확산의 추세를 노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국 사회는 보다 정교하고 세밀한 수용 자세를 취해야 한다. 특히 러시아 극동지역,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에 모국적 뿌리를 갖고 있는 한국계 트란스미그란트의 유입은 꾸준한 것으로 전망된다.
마지막으로 트란스미그란트는 양국 모두에서 공적인 시민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초국적 무시 민권 상태의 초국적 시민들(transnational citizens without civil rights)이다. 정치적인 무시민권의 상태와 실질적인 시민권 혹은 거주권의 상태가 묘하게 결합돼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속해야 할 정부와 사회는 궁극적으로 어느 곳을 향해야 하는가.
이같은 트란스미그란트의 '자기 경계 허물기' 내지는 '고정된 정체성의 거부'는 글로벌화 추세화 관련을 맺을 때 어떻게 자기 확장을 해나갈 것인지 보다 밀착돼고 정교한 후속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