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은 착용자의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 뿐만 아니라, 당대 한 민족의 시대상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선시대의 엄격한 복식제도는 사회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신분형 사회제도에서 최상위층이었던 궁중 어린이 복식의 명맥을 찾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본 연구는 조선시대 후기 어린이복식과 궁중 어린이 복식을 의례복과 평상복으로 구분하여 문헌, 선행연구, 유물을 중심으로 알아본 후, 조선시대 후기 영친왕 일가 중 진 왕자와 구 왕자의 백일부터 5세까지 궁중 어린이 복식을 실제로 재현하는 것이며, 구체적인 연구방법은 다음과 같다.
제작과정은 유물선정, 옷감준비, 필요치수와 도식화 제시, 마름질, 바느질법 순서로 진행한 후, 재현작품을 제시하였다. 연구대상이 되었던 유물은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편찬한 『영친왕 일가 복식』 과 김영숙의 『조선조 말기 왕실복식』 자료를 기초로 하여 의례복 2점, 평상복 6점인 총 8품목을 선정하였다. 옷감은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편찬한 『영친왕 일가 복식』 에 제시되어 있는 자료를 토대로 고증, 재현한 옷감 전문점에서 구입하거나, 유사한 문양과 색상이 없어 주문제작, 연구자가 직접 염색하였다. 필요치수의 경우, 화장, 길이, 품은 『영친왕 일가 복식』 을 토대로 하였으며, 그 외 치수는 김영숙의 『조선조 말기 왕실복식』 을 근거로 재현하였다. 한편, 바느질법은 『영친왕 일가 복식』 의 사진자료와 동일하게 손바느질법으로 재현하였다.
본 연구결과, 도출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조선시대 후기 어린이 복식에서 의례복에는 백일복·돌복·명절복이 있다. 어린이 복식에 가장 대표적인 돌복은 현재까지 전개되어 입혀지고 있으며, 평상복으로 저고리 바지, 오방장두루마기, 동다리, 전복등이 있지만 신분에 따라 복식에 나타나는 상징성과 색채·문양에 따라 엄격한 복식제도는 궁중 어린이 복식이 맹맥을 찾아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
2. 조선시대 후기 진 왕자와 구 왕자의 유물인 궁중 어린이 복식을 의례복, 평상복으로 구분하여 재현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의례복
(1)자적도류단 용포(紫的桃榴緞龍袍)
겉의 단령은 복숭아, 석류, 불수감이 시문된 자주색의 도류단이고 안의 직령은 홍색 운보문사, 동정은 녹색 모본단으로 단령의 겉부분은 촘촘하게 홈질로 바느질하고 안쪽 마무리는 공그르기로 고정하였다.
(2) 다홍저 화단 창의(多紅苧禾緞整衣)
홑 단으로 지은 포로 시접은 안으로 꺾어 접어서 정교하게 바느질했다. 뒷길이 트여 있어 매우 활동적이다. 겨드랑이에는 홍색 운보문사(雲寶紋沙)로 된 속바대를 대어 실용적이다.
2).평상복
(1) 연두(軟豆) 겹저고리
남송색 별문 숙고사로 지은 춘추용 저고리이다. 손바느질로 지은 저고리로 등, 소매, 섶, 무 등 연결은 홈질로 하였고, 수구는 흰색실로 한 땀씩 상침 하였다.
(2) 진분홍 별문 숙고사 겹두루마기
겉은 진분홍 별문 숙고사, 안은 연두색 명주, 옷고름은 남색 별문 숙고사로 지은 춘추용 겹두루마기이다 돌띠고름 겉의 위, 아래, 안쪽 아래와 짧은 고름 앞뒤에 길상어문으로 부금하여 무병장수와 부귀에 대한 염원을 기원하고 있다.
(3) 오방색 두루마기(五方色周衣)
까치두루마기와 형태는 유사하나 진동선이 조끼와 같이 둥글며 소매는 홍색이다.
(4) 까치두루마기
길은 연두색, 깃, 고름, 돌띠에는 남색이며, 손바느질로 제작하였다.
(5) 별문 소색 숙고사(素色熟庫紗) 풍차바지
겉은 별문 숙고사, 안은 고운 무명, 허리와 허리끈은 모시로 지은 여름용 풍차바지로 손바느질로 지었다. 앞 까마귀머리 부분에 오복을 상징하는 박쥐매듭이 3개 달려 있다.
(6) 별문 숙고사(熟庫紗) 풍차바지
겉, 허리, 허리끈은 별문 숙고사이고, 안은 무명을 사용하여 손바느질로 지은 풍차바지이다.
본 연구를 진행하면서 기초가 되었던 유물들이 시간의 경과와 완벽하지 못한 보존으로 인해서 약간의 변색과 변형은 재현 제작하는데 있어 아쉬웠으나, 제작과정을 통해서 선조들의 섬세한 제작기술을 재인식하게 되었으며, 소홀히 다루어졌던 궁중 어린이 복식을 문헌에 그치지 않고 유물재현에 좀 더 충실하려고 하였던 점이 본 연구의 의의라고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