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는 여러 방면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다. 인간의 깊은 사색과 호기심, 문제 해결 능력의 끝없는 발전은 인간 문명의 찬란함을 이룩하는데 원동력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는 아쉽게도 인간 본질과 문명 발전 사이에서 균형감을 잃고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인간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고 인간의 삶을 포기하는 경우는 심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본 연구는 이러한 현상의 문제점에 주안점을 두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신화를 꼽는다. 신화는 3만여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인류의 행보와 함께 해 온 최고(最古)의 철학서이며, 그 심중한 내용을 바탕으로 문제점의 원인을 찾는데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우선, 신화는 상징을 통해 인간 존재의 시원(始原)을 드러낸다. 상징들을 찾아 해석하고, 현대에 적절히 응용하는 것이 현대인의 몫이다. 세계의 모든 존재들은 시원이 존재하며,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진정한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20세기 대표적 신화학자인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신화의 특징들을 다수 정의 내리는데, 그 중에서도 '성스러움'은 신화학의 핵심 내용이다. 성스러움은 역사적 시공간을 초월해, 신의 영역을 인간의 마음영역에서 심미적으로 공유하는 현상이다. 인간은 성스러움을 자주 대면할수록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집착, 욕망, 허무함, 분노 등을 떨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이 더 고차원적 인간으로 변모된다는 의미이다. 본 연구는 엘리아데 신화학의 대표적 특징인 '성(聖)스러움'과 내면의 초월, '속(俗)'이 갖는 시공간 개념, '반복'에 의한 본질의 발견, '재생'을 통한 영원회귀의 삶의 개념 등을 이론적 배경으로 삼았다. 특히 위 특징들 중 '성스러움'은 본 연구의 핵심 키워드이다. 이것은 신화가 현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며,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의 주제를 펼치는데 중요한 근거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엘리아데의 '성스러움'을 중심으로 21세기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태국 출신 영화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군의 영화 4편을 분석했다. 〈친애하는 당신(Blissfully Yours)〉, 〈징후와 세기(Syndromes and a Century)〉, 〈열대병(Tropical Malady)〉, 〈엉클 분미(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가 그것이다. 이 작품들은 감각적이고 흥미위주인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과는 크게 다르다. 주로 애매모호하고 어렵다는 평을 듣는 편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동양 사상을 바탕으로 신화적 요소를 모두 담고 있는 영화들이며, 감각적 흥미보다는 관객 스스로 자각하고 자문자답하게 하는 지적 유희를 불러일으킨다.
본 연구는 위 4작품 속에 신화적 개념이 적용된 부분들과 '성스러움'이 특징적으로 드러난 장면들을 집중 분석한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 해체, 시간의 순환성, 안식과 치유의 공간인 숲, 생명의 나무, 동굴, 물 등 바로 그 예이다. 이 장면들은 인간이 내면을 통해 성스러움을 공감하는 중요한 예로서 핵심적 연구 분석 부분이다. 이러한 성스러움에 대한 연구는 다음 장으로 이어지는 신화의 현대적 의미 분석에 중요한 근거로 작용한다.
마지막 장에서 본 연구는 신화의 '성스러움'이 현대에서 어떤 식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 분석하고, 신화적 현실이 갖는 긍정적 측면과 한계점을 고찰했다. 아피찻퐁 감독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경계 해체라는 신화적 개념은 마치 〈징후와 세기〉를 관람하는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 하는 동시에 영화에서 벗어나 오히려 현실적인 존재적 사유로 유도하는 경우와 같은 창조적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대에 들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경계 해체의 개념은 개개인의 상식과 사유의 한계를 뛰어넘어 상상의 세계와 형상의 창조라는 효과를 낳는 신화의 긍정적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성스러움과의 잦은 대면이 인간으로 하여금 고도의 집중력을 지닐 수 있도록 발전시키며, 내면에 존재하는 성스러운 부분을 자각시켜 좀 더 성숙하고 고차원적인 인간으로 변모시킨다는 점이다. 이것은 다양한 도전을 전제한다는 점에 있어 궁극적으로 자아 초월이라는 성장을 돕는다. 마지막으로 신화는 상징을 갖는다는 특징 때문에 인간의 깊은 사유를 끊임없이 유도한다. 이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전제 조건으로 더 나은 인간으로 탈바꿈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반면에, 현실 속 신화의 한계로는 깊은 사유를 위한 주체적 의지가 필수적이라는 점, 규정된 신화의 삶의 방식과 원리로 인해 존재적 사유에 한계를 갖는다는 점, 마지막으로 신화의 시공간의 개념을 현실에 적용시키기는 매우 힘들기 때문에 예술장르나 다른 적용 도구를 적절히 찾아내 현실에서 발현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계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신화는 3만여년 이상 인류의 삶과 함께 해온 최고(最古)의 철학서로서 존재 가치가 분명하다. 본 연구는 위와 같은 분석 과정을 통해 신화의 충분한 개념과 가치를 인지하고, 창조적 삶, 성스러움과 자아초월을 통한 더 나은 성숙한 삶, 사유적 삶 등과 같은 현실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좀 더 만족스럽고 풍요롭게 삶이 펼쳐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