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식량'이 먹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오늘날 식량위기는 사회구조적인 세계 식량 체계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본다. 세계 식량 체계는 가부장제와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결합되어 젠더 불평등한 구조를 심화시키고 여성농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여성농민들은 세계 식량 체계에 대한 대안으로 식량주권 운동이 벌이고 있다. 한국 내에서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이 식량주권 운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여성농민들의 식량주권 운동이 젠더 불평등한 세계 식량 체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대항담론으로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첫째, 여성농민들은 식량주권 운동을 통해 세계 식량 체계에 내재되어 있는 젠더 권력 관계를 인식하고, 현실을 바꿔 나가면서 여성농민의 권리 보장에 기여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둘째, 한국 사회 내에서도 여성하위 주체로서 조명되지 못했던 여성농민이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는 주체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으로서 식량주권 운동이 여성인권의 개념을 어떻게 확장시켜 나가는지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식량주권과 페미니즘의 연관성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전여농에서 벌이는 식량주권 운동의 다양한 영역 중에서 언니네텃밭의 여성농민 생산자 공동체와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에 참여하는 11명의 여성농민들에 대한 심층면접을 진행하였다.
연구 결과, 식량주권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농민들이 권리를 획득해 나가는 과정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성농민들은 가족 내에서 자기 결정권을 가지게 되면서 농사 과정에 개입하여 결정하고 참여하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었으며, 생산자 공동체 활동은 여성농민의 역량을 강화시키고 있다. 또한 여성농민들은 마을과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아 나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통해 기업에게 빼앗긴 종자에 대한 농민의 권리를 되찾아 오는 것은 물론 여성농민의 지혜가 '쓸모 있는 지식'으로 재발견되고 있다. '텃밭'은 노동을 통해 생산하는 생산물에 대한 노동 가치가 없던 사적 영역의 공간에서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탈바꿈하였다. 여성인권 개념의 확장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여성농민들은 식량주권 운동에 있어서 '권리'의 획득과 보장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국제적인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농민인권선언은 여성농민의 존재를 언급하고 기술하면서 '농민'이라는 단일한 범주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었던 여성을 가시화하였다. 마지막으로 여성농민의 식량주권 운동이 과연 세계 식량 체계의 대항담론으로서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여성농민들은 식량주권에 대한 개념을 재구성하고 소비자와 신뢰 관계를 형성하면서 식량주권 담론을 확산시켜 나가고 있었다. 식량주권 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초국적으로 여성운동 진영과의 연대, 여성인권의 영역을 넓히면서 세계 식량 체계에 균열을 시도하면서 등장하고 있었다.
여성농민의 식량주권 운동은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식량주권이 실현되는 세상은 남성과 여성, 민족, 인종, 사회 경제적 계급, 세대 간 불평등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젠더 불평등한 세계 식량 체계를 변화시켜 나가는 여성농민의 식량주권 실현을 향한 도전과 실천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