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의 목적은, 요한 바오로 2세가 『몸의 신학』에서 제시하는 인간학에 기초하여, 그리스도교 독신의 의미와 가치를 '시원(始原)적 고독의 회복이자 종말론적 친교의 선취(先取)'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시원'과 더불어 '최종 미래'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몸의 신학』에 따르면, 결혼과 독신이라는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소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몸과 성이 지닌 의미를 '창조'와 '종말'을 포함한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에 본고는 「창세기」에 묘사된 원죄 이전의 인간 경험과 『신약성경』에서 계시된 종말론적 실재로서의 몸의 부활에 대한 요한 바오로 2세의 논의를 토대로 그리스도교 독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모한다.
고독은 인간 실존의 근본 조건으로서 인간과의 친교를 넘어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을 의미한다. 시원적 경험 중에서도 가장 우선적이며 근원적인 것은 시원적 고독이다. 시원적 경험이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최초로 하느님을 거스른 시원적 죄, 즉 원죄를 짓기 이전까지 누렸던 순수하고 행복했던 상태를 가리킨다. 「창세기」 2장에 따르면, 최초의 남녀가 한 몸의 일치를 이루고 서로가 벌거벗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순수한 상태를 누리기 이전에 인간은 하느님 앞에 홀로 있는 고독한 존재였다. 여기에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인간만이 창조주 하느님의 파트너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근본적인 사실은 인간은 본성상 하느님과 세상 앞에서 고독한 존재라는 것이다.
종말 때 충만하게 성취될 하느님과의 일치는 시원적 고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최종 목적이다. 인간의 최종 미래는 죽음의 허무가 아니라 인간적인 모든 것의 충만한 완성이라고 믿는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이 부활하여 하느님과의 온전한 일치와 친교를 이룰 것을 희망한다. 공관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가능성을 논하는 자리에서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라며 종말 때의 인간 조건에 대하여 계시한다. 또한 마태오 복음은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교 독신이 종말론적 현실을 증거하는 표징이라고 이해하는 직접적이고 설득력 있는 근거가 되어 왔다.
그리스도교적 의미에서 독신은 결혼과 마찬가지로 몸의 혼인적 의미를 궁극적으로 실현하고 완성하도록 초대받고 있다. 인간이 남자 또는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담겨 있는 몸의 혼인적 의미는 자기를 온전히 내어놓는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하느님으로부터의 초대인 것이다. 결혼의 삶과 독신의 삶 모두 이 초대에 응답하는 길이다. 이런 점에서 독신은 결코 결혼이나 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 독신 성소가 결혼 성소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독신의 가치가 결혼의 가치에 반대되는 것이어서가 아니라, 독신과 결혼 모두 지향하고 있는 사랑의 삶과 하느님과의 일치에 있어서 독신의 삶이 보다 직접적이며 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원적 고독을 통해서 하느님 앞에 홀로 있음이 인간 본래의 조건임을 알 수 있다. 하느님과의 일치만이 해소할 수 있는 고독은 하느님과의 종말론적인 친교 안에서만이 궁극적인 완성으로 실현된다. "하늘나라를 위한 독신"은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 고독을 긍정하는 그리스도교적 삶의 양식이며, 시원적 고독의 회복과 종말론적 친교의 선취를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