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후 삶의 지침이 되어 우리가 갈 길을 비춰준다고 믿었던 절대적인 가치와 신을 잃은 현대인은 허무주의에 빠져있다. 이것은 단지 절대적인 가치와 도덕적 기준에 매여 있던 과거의 습관 때문이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여전히 내밀한 곳에 남겨진 어떤 잣대에 미치지 못한 상황을 한탄하고 무(無)라는 새로운 가치에 기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삶의 생명력을 중요하게 여겼던 실존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가치의 상대성을 지적하고 노예적인 수동성에서 벗어나서 자신이 주인이 되는 능동적인 힘에의 의지로 삶을 긍정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근대의 잔재에서 촉발한 허무주의와 근대성의 폐해를 타파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본 연구는 선댄스 키드(Sundance Kid)의 실험정신을 계승하는 리처드 링클레이터(Richard Linklater)의 2001년작, 장편 애니메이션 〈웨이킹 라이프(Waking Life)〉를 통해 니체가 촉구하는 삶에 대한 긍정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했다. 이 영화는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독특한 움직임,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몽환적인 스토리 전개라는 참신한 실험 정신을 보여주고 독창적인 로토스코핑(Rotoscoping) 기법을 통한 실사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작품으로 평가되어 왔다.
작품의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기존의 선형적인 내러티브를 깨뜨렸고, 복잡한 다층적 관점의 혼용을 통해 절대적인 원근법적인 시선을 거부하는 관점의 다원주의를 표방했으며, 내용상의 인과성을 없앰으로써 관객이 파편화된 영상 정보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해석 공간을 창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제까지 로토스코핑은 실사의 모사라는 한계 때문에 추상적인 애니메이션에 비해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우연성에 맡긴 움직임과 회화적 변용, 그런 변용에서 창출된 새로운 벡터로 인해 투명한 매개적 존재로서의 로토스코핑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부여받고 자신의 매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진화된 기법은 니체가 주장했던 세계 해석의 새로운 주체인 몸과 이성이 함께하는 신체처럼 이 작품이 현실과 영화적 가상의 해석 주체가 되도록 생명력을 부여한다.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자신의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을 구별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잃어버린 자기 리얼리티를 찾아 표류한다. 목적을 상실한 채 낯선 세계로 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근대 이후 절대적인 목적이나 어떤 준거점도 없이 자신의 실존에 회의를 갖는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한다.
감독은 주인공과의 대화를 빌어 우리에게 "영원이라는 지금 순간에서 살 것인지, 영원이라는 순간을 거부하고 죽은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요구한다. 이것은 니체의 영원회귀와 중첩이 되면서, 종국에는 단 하나의 순간과 하나의 삶만이 끊임없이 이어지므로 실존하는 이 순간을 긍정할 것인가를 묻고 있는, 실존에 대한 긍정의 요청으로 읽을 수 있다. 절망에 빠져 자신의 현실을 죽음으로 받아들이려하던 주인공은 이 선택의 순간에 다시 삶에의 의지를 보이며, 영원이라는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어린 시절의 시공간으로 돌아가 꿈의 현실을 자신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실존에 대한 긍정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모든 과거와 미래는 현존하는 이 순간에 담겨있으며, 매 순간은 창조의 순간이다. 창조와 함께 체험을 동시에 수행하는 인간은 실존의 성스러움을 몸소 실천하는 중이고,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존재하므로 모든 가능성이 열린 존재이다. 따라서 삶을 긍정하고 매순간을 창조로 체험하는 자들에게 삶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실존 탐색의 여정을 통해서 지나간 과거나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는 대신 지금 현재에 대해 긍정하는 자들이 삶을 창조로써 체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