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는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유교사상을 정치 이념으로 삼고 학문장려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중의 하나로 인·의·예·지·신을 바탕으로 한 삼강오륜을 특히 강조하였는데, 그 일환으로 윤리도덕을 교화 시키기 위한 행실도 류 서적이 간행되었다.
정조 21년에 간행된 『오륜행실도』는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묶어 이루어진 책으로, 국적을 불문하고 유교 이념에 적합한 사실만을 간추려 정리한 것으로 중국인의 사례가 대부분이다.
1700년대 말에 편찬된 『오륜행실도』에는 이전의 행실도 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단령 입은 여성이 표현되었는데, 그 이유가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 당시의 중국화풍의 영향으로 인한 표현의 일환으로 볼 수 있으며, 또 다른 의견으로는 실제로 여성이 단령을 입었을 것으로 추측해보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여성이 '단령' 이라는 명칭으로 의복을 입었다는 기록이나 보고서는 없다.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는 둥근 깃을 의미하는 형태상의 용어인 단령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과 중국·우리나라의 인물화, 도용, 그리고 16세기에서 17세기 초에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여성 단령의 형태를 살펴보고 나아가 오륜행실도에 나타나는 여성 단령과 비교하고자 한다.
오륜행실도에 나타난 여성 단령의 모습은 판화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 없다는 제한 점을 갖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 단령의 길이는 무릎 밑 정도이며 소매는 좁은 착수 형과 통수 형 소매가 동시에 나타난다.
둘째, 허리에는 대대를 매고 앞으로 늘어뜨렸으며, 깃과 소매에는 이색 단을 댄 경우가 많다.
셋째, 단령의 형태로 보아 무는 안으로 접혀 들어간 다중안주름 형 무가 달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륜행실도가 간행되기 이전인 16세기에서 17세기에 출토된 여성 단령의 형태를 살펴보면,
첫째, 모두 홑옷이며 소매는 대부분 직배래 통수이다.
둘째, 단령의 길이는 매우 길고 넓다. 하지만 매듭단추와 끈으로 품을 조정하여 옷의 실루엣을 이루어준다.
셋째, 대대가 발견된 단령이 많으며, 흉배 부착 시 품계에 맞지 않게 흉배를 달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넷째, 옆선에 달린 무의 형태는 다중 주름형으로 그 이하는 트임이 있다. 무가 예외의 경우는 전주 최씨, 죽산 이씨, 경기도 광주 출토 무연고 단령으로 원삼의 형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상에서 살펴본바 오륜행실도에 나타난 여성 단령의 모습은 출토복식에 나타난 여성 단령의 모습과는 다소 다르게 나타나지만, 그 이전에 다른 행실도 류에 표현되지 않았던 복식의 형태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간행 되는 윤리 교화서에 표현되었다는 것은 여성이 단령을 입었을 가능성이 큼을 시사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출토복식과 문헌에 나타나는 여성 단령에 관한 꾸준한 연구와 기록의 분석을 통해 여성 단령의 착용 가능성에 대하여 알아보고, 정확한 명칭의 분류를 통해 조선시대 여성 복식의 변화와 문화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데 의의를 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