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평화시장 13살 시다에서 '여공'으로, 또 1960~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적극적 주체로 성장하게 된 한 여성노동자의 생애 경험에 대한 자전적 서술이다. 그동안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은 대부분 외부 '지식인'에 의해 쓰여졌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살아있는 육성과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 노동사 해석과 운동사 · 사건사 중심의 기존 연구는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주체였던 여공들이 무엇을 경험했고,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노동자로 되어갔는지를 다루지는 않았다. 이 연구는 한 개인의 생애사라는 형식을 통해 기존 연구에서 누락되어 있는 여성 노동자 자신의 경험과 해석, 관점을 복원하고자 하였다. 본 논문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66년에서 1974년까지 시다, 미싱사로 겪었던 나의 노동경험과 생활사는 산업화 초기 '여공'의 형성과정을 보여준다. 서울로의 이주와 판자촌, '다락방'을 비롯한 평화시장의 처참한 노동환경, 사장-재단사-재단보조-미싱사-시다로 서열화된 노동과정은 박정희 정권의 '선성장 후분배' 전략과 맞물려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과 인권을 심각하게 제약하였다. 이 논문은 1970년대 이후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이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던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의 주체의 경험과 조건을 생생하게 드러냄으로서,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탄생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둘째, 고된 노동과 영양실조로 지쳐있을 때, 나는 '중등과정 무료'라는 〈노동 교실〉의 유인물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청계노조〉와 '전태일'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회고는 '7번 시다' 혹은 '1번 미싱사'로 불리던 '공순이'가 '신순애'라는 이름을 되찾고 당당한 '노동자'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아가 〈청계노조〉를 중심으로 한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퇴직금 받기', '다락방 철폐' 등의 연대투쟁은 평화시장 와이셔츠업계의 '1일 8시간 노동'이라는 법정 노동시간 현실화와 퇴직금 확보라는 커다란 성과를 낳았다. 실제로 〈청계노조〉의 연대투쟁은 평화시장의 라인 공정 도입 및 다락방 감소와 같은 작업장의 환경 변화에 실질적인 힘을 가하였다. 이러한 헌신적인 투쟁의 이면에는 전태일동지에 대한 살아남은 사람들의 죄책감도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전태일동지의 죽음 이후 그의 친구들은 노조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투쟁했다. 그런 선배들이 있었기에 나와 조합원들은 열심히 활동할 수 있었다. 또한 이 논문은 투쟁사 이면에 '여공'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진행했던 '한글반' 및 '아카시아회' 운영과 같은 일상적인 교육·문화 활동과 생활상의 두터운 부조와 친목이 자리했음을 기록하였다.
셋째, 이 논문은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통해 성장한 여성노동활동가들이 '왜 보이지 않게 되었는지'에 대한 하나의 단서를 제공해준다. 1981년 1월 5일 〈청계노조〉 강제 해산을 전후로 전두환 정권이 자행한 심각한 인권침해는 기존 노동사 서술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부분이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은 권리를 찾으려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빨갱이'라는 이념공세를 가했고, 나의 가족사에도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또한 '블랙리스트'를 비롯한 '성고문'의 공포는 많은 여성노동활동가들을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하는 배경이 되었다. 2000년대 후반 과거사 청산의 노력 속에서 70년대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국가의 체계적인 인권탄압이 인정되었고, 극히 일부분이지만 명예회복 조처가 이루어졌다. 30~40년여의 기나긴 세월 동안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던 여성 노동자들의 삶이 '시민권'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무서운 상처 속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은 꿋꿋하게 살아남아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당당한 주체로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청계노조〉의 운동사 속에 드러난 나의 인생 역정은 노동자 · 시민 · 여성으로서의 주체성 획득 과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논문의 가장 큰 의의는 여성 노동자 자신의 손으로 쓰여진 노동사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부족하지만, 이 글이 하나의 눈덩이가 되어 노동자 자신의 역사쓰기를 시작하는데 작은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