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이른 바 '파출부'로 불리던 가사노동자들은 최근 '가사노동자'로서의 명칭과 지위를 획득해가고 있다. 본 논문은 가사노동자이지만 그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던 여성노동자들은 과연 누구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이 논문의 핵심적인 주장은 첫째, 가사노동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가족의 빈곤여성들이며 둘째, 이들은 이 노동을 통해 가족생계를 해결하고 가족 구성원들의 신분상승의 기초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셋째, 이런 가사노동의 역사적 수행과정을 통해 스스로 그 노동의 성격과 지위를 변화시킨 주체라는 점을 밝힌다.
가사노동자의 역사적 과정은 식모-〉 파출부-〉 가사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변화하면서 각 주체의 성격과 노동형태, 노동자로서의 지위가 변화해 왔다. 먼저 '식모'는 1960 대 등장, 이들은 전통적 신분사회에서의 '하녀'라는 계급에 속한다. 이런 전근대적 신분은 '주인집'(고용주-가족)으로 하여금 그들에 대한 폭력과 착취 그리고 억압적 노동을 사회적으로 승인하는 조건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식모들은 이러한 차별과 폭력, 소외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가사노동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수행했고 이는 결국 주인집이 식모들에게 집안일의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식모들은 자신의 노동경험을 근대적 노동능력으로 전환시키면서 자신들의 전근대적 하녀신분의 존재를 근대적 노동자(임시노동자)의 형태로 확장시켰다. 전근대적 신분체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주인집(고용주-가족)은 식모들의 저항에 맞서 식모폐지론을 주장하지만 결국 식모들은 이 과정에서 전일제 식모에서 시간제 식모로의 자신의 신분을 변화시켰다. 철저하게 종속적이었던 입주 전일제 하녀가 아니라 출퇴근하며 신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제식모로의 이행은 이들이 신분구속으로부터 벗어나며 저당 잡힌 계약에서 시간제계약으로 제한적 시간을 제공하는 임시노동자로 변화했다. 이와같은 '식모'노동 주체와 노동형태 변화의 토대 위에서 1980년대 들어 등장한 '파출부'들은 또 다른 조건에서 노동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들은 주로 기혼여성이자 여성가장으로서 자녀를 중심으로 한 가족경제를 책임져야하는 조건에 놓인 여성주체들이었다. 이들은 자기 가정의 가사노동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파출노동을 수행해야했으므로 이는 임시노동자로서 혹은 아르바이트 개념의 노동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출노동은 전단계의 식모노동과 유사하게 가족을 위한 생계노동이었다. 즉 이들의 노동은 빈곤기혼여성들이 자기 가족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하여 이들에게 주어진 거의 불가피한 선택지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등장한 '가사노동자'들은 '식모', '파출부'들처럼 가족 생계유지를 위한 주체들이지만 동시에 가족(혹은 남편)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하려는 새로운 주체들을 포함함으로써 가사노동자 구성원들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물론 여전히 생계유지생산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최근 점차 경제적 독립을 만들기 위한 경제적 측면에서 가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가사노동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여성들이 사회적 활동이 많아지면서 공백으로 남은 가사노동부분을 가사노동자들이 담당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역할분담노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즉 여성의 사회적 활동의 증가로 인한 가사노동의 공백을 가사노동자들이 채워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노동력제공 시간 내 가사노동을 무조건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에 의한 노동수행과 조건에 의한 합의에 기초함으로써 가사노동자 본연의 전문적 직업으로서 그 성격을 가져가고 있다.
여성 가사노동자들은 공적영역에서 배제된 비생산적 공간으로 평가되었던 가족이라는 재생산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사노동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구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경제적 독립을 위해 노동하는 노동자들을 형성하고 있다. 본 논문은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가 배제하고 소외시켰던 사적공간의 가사노동은 사회적 통념처럼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노동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것을 수행하는 수행주체 또한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존재가 아님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가사노동자 주체들과 그들이 수행한 노동의 역사적 의미가 밝혀짐으로써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자성과 노동권을 확립해 나가는 데 필요한 기초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