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조선시대 원삼의 유래 및 변천과정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전형적인 형태의 원삼은 물론 학계에서 여성 단령이라 칭하는 '단령형 원삼' 및 단령과 원삼의 특징을 동시에 지닌 '과도기형 원삼'을 포함하여 원삼의 초기형태부터 후기의 정형화된 원삼까지 조선시대 원삼의 변천과정 및 전체적인 흐름을 조사하였다.
원삼의 유래는 명나라에서 조선에 사여한 단삼으로, 이것이 국속화(國俗化) 되어 변화를 거듭하며 발전하여 조선 후기 원삼의 모습으로 정착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대명회전(大明會典)』에 기록된 명나라의 단삼 제도와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나타난 단삼에는 형태와 용도면에서 유사점이 발견되며, 일찍이 15세기부터 문헌에 '원삼'이라는 용어가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기록 또한 용도와 옷감 소요량 측면에서 단삼(團衫)이 원삼(圓衫)과 동일한 옷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로써 원삼의 여러 가설 중 하나인 '단삼(團衫)이 곧 원삼(圓衫)'이라는 가설을 증명하였다.
원삼의 형태는 조선시대 초기에 일반적인 남성 단령과는 분명한 차이점이 발견되는 단령형 원삼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원삼 초기 교임의 단령형 깃은 대금형의 맞깃으로, 무는 사각형의 접은 무에서 삼각형 무를 거쳐 사라지고, 도련은 직선에서 곡선으로, 소매는 색동이 없는 통수(筒袖)에서 색동이 달린 대수(大袖)에 한삼을 다는 형태로 변화하였음을 여러 유물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원삼의 조형적 특징에 따라 시기를 4기로 구분하고 시기별 특성을 정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원삼 1기는 원삼의 발생기로, 임진왜란 이전인 15세기에서 16세기에 해당한다. 발생기 원삼은 단령형 원삼으로 기능적인 측면에서 여성의 표의로 사용된 예복이며 조형적인 특징은 깃 모양이 단령과 같고 여러 겹의 접은 무가 달렸으며 소매는 직배래의 통수형으로 원삼 대대(大帶)가 포함된다. 발생기 원삼에 사용된 소재로는 면직물· 견직물 등 직물의 종류가 가장 다양하며 무늬가 없는 무문직물과 무늬가 있는 유문직물의 비율이 거의 유사하게 나타났다.
원삼 2기는 원삼의 과도기로 17세기 초부터 중반의 원삼이 해당된다. 과도기 원삼은 단령형 원삼과 전형적인 원삼이 합해진 복합형 원삼이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원삼이 존재하며 발전기 원삼의 형태로 전향하기 위한 일종의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짧은 기간 내에 많은 변화와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진다.
원삼 3기는 원삼의 발전기로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에 해당한다. 다양한 형태를 시도하던 과도기를 겪은 원삼은 안정적인 유형을 갖추며 본격적인 발전을 이룩한다. 과도기 원삼에서 나타났던 단령의 요소는 완전히 사라지고 전형적인 원삼의 조형성이 나타났다. 대금형 깃과 두리소매가 나타나며 무가 사라지고 옆선과 도련의 형태가 곡선형으로 자리잡는다. 특히 3기의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는 2기까지 홑옷이던 원삼이 겹옷으로 바뀌는 중요한 전환점이 포함된다. 발전기 원삼의 직물사용 경향은 점차 무늬가 있는 직물의 비중이 커지는 특징을 나타낸다. 발생기에서 발전기로 가면서 유문(有紋)직물의 비율이 늘어나고, 사용된 무늬는 대부분 연꽃무늬[蓮花紋]가 많았다.
원삼 4기는 원삼의 확대기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의 조선말기 원삼에 해당되는데 정형화된 근대원삼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확대기 원삼은 다양한 형태의 원삼이 공존하던 과도기 및 안정적인 발전을 이루는 발전기와는 달리 원삼의 형태가 정형적인 틀 안에 고정되며 옆선과 도련의 실루엣이 직선형으로 된다. 확대기의 원삼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궁중과 반가에서 예복으로 사용한 원삼과 민가에서 혼례복으로 사용한 원삼으로 그 양식이 이분(二分) 되는 특징을 나타낸다. 확대기 유물은 대부분 전세(傳世) 유물로 나타나고 있는데 대부분 출토유물인 발생기와 과도기 및 발전기의 원삼에 비해 색상과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확대기 원삼의 직물사용 경향으로는 무문(無紋)직물은 거의 사라지고 유문(有紋)직물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유문직물 또한 매우 정형성을 띄며 직물의 종류도 단(緞)과 사(紗)로 단순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