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서구문명의 도입기에 있어 동양에서의 경쟁력은 서구 선진문화를 따라잡는 것이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성립한 서구문명의 영향으로 고도의 기술, 도시화, 국제적 상업화는 이루었으나 이로 인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는 매우 혼란스러워졌으며 환경 재앙 등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기술과 문명이 발전된 오늘날 인간과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문화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며, 이를 위해 서구의 분석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전일적이고 종합적인 동양사상의 사고가 요구되고 있다.
동양사상은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강조하면서 현대 물질문명이 야기한 자연과 인간성 파괴를 줄일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대두하고 있다. 동양 중에서 일본은 현 시기에도 자연과 문화, 전통을 건축과 조화시킨 나라 중의 하나로 건축 역시 지속, 발전시키고 있다.
일본에서 공간이란 하나의 물체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문화, 전통, 풍속과 관계된 것으로 우주를 뜻했다. 또한 공간은 사물의 구성물체로 상징적 의미나 성격으로 다루어져 물리적인 영구성은 중요시 되지 않았다. 끊임없는 자연경관의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는 우주론적 자연관을 가진 일본인에게 있어 공간의 성립 역시 이미 완성된 완결한 공간이 아니라 주변의 상호작용, 시기의 추이에 의해서 끊임없이 변화하여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 전통공간의 특성을 요약하면 '건축과 자연', '물질과 정신', '시간과 공간' 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 있어 공간은 반드시 물리적으로 둘러싸여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물리적 실체 없는 공간감이 일상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일본적 공간감은 일본의 지리학적 특징과 자연관, 종교관, 사고관과 더불어 일본인 특유의 미의식을 바탕으로 살펴본 바 이러한 공간특성을 형성하는 자연친화성, 초월성, 모호성, 순수성, 재생성, 비움(空), 연속성, 융통성의 요소들을 갖고 있었다.
현재 일본의 건축 공간은 전통에 대한 사고가 '일본적'이라는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있는데 이것은 일본이 전통의 본질에 대한 깊은 탐구로 그들만의 디자인 언어를 찾아가고 있으며 그 언어는 다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확산되어 일본적인 것들이 깊숙하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의 이러한 노력은 서구화에도 불구하고 모든 면에서 전통을 변용한 현대 일본문화의 독특한 민족적 문화요소로 남아있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요소들이 혼재하는 상황 속에서 일본의 현대 건축가들은 전통을 의식하면서도 다양한 절충을 시도하고 있다. 쿠마 겐코는 그의 다양한 건축적 배경과 활동들을 통해 전통적 공간의 개념을 수용하고 건축 내면의 사상이나 주체적 고유함과 지역성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근대건축과 메타볼리즘이 단절시킨 문화적 맥락을 회복하기 위해, 현대건축이 가져온 부정적인 측면을 비판 하며 일본 고유의 전통성을 반영한다.
쿠마 겐코 공간의 특성을 살핀 결과 그의 공간에는 '환경과 공간의 조화', '물성의 재해석', '시·공간의 연속'으로 전통공간 특성이 반영되고 있었다. 이 세가지 특성은 각각 일본 전통공간 요소를 반영한다. '환경과 공간의 조화'는 대지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순응성'과 주변환경을 공간 내부로 전이시키는 '투명성'으로 일본 전통공간 요소 중 연속성, 자연친화성, 모호성과 상관성을 보였다. '물성의 재해석'은 재료 자체가 갖고 있는 속성을 강조하는 '물성'과 공간의 이미지를 경량화하는 '경량성'으로 일본 전통공간의 요소 중 순수성, 비움(空)과 상관성을 보였고 '시·공간의 연속'은 주변환경과 역사적·정신적 경험, 지식 등 사회·문화적 요인에 대한 제반 사항을 포함하는 '관계성'과 유기적 생명체로 파악하는 개념을 보여주는 '유기성'으로 일본 전통공간요소 중 초월성, 연속성과 상관성을 보였다.
따라서 일본 전통공간 특성이 반영된 쿠마 겐코의 공간 디자인 경향을 '환경과 공간의 조화'는 순응성과 투명성, '물질의 재해석'은 물성과 경량성, '시공간의 연속'은 관계성과 유기성이란 키워드로 세분화 하여 특성 별로 분석하였다.
쿠마 겐코는 단순히 공간을 대지와의 일체성으로만 해석한 것이 아니라 주변여건들을 고려해 이질적이지 않은 공간, 원재료가 갖는 물성을 강조하면서도 물질을 억압하지 않는 암시적인 인식 장치만으로도 공간을 조정하고자 한 경량적 이미지의 공간, 그리고 역사성과 지역성이 퇴색되거나 상실된 장소들에 활력을 불어넣어 촉매역할을 하는 공간을 구현하고 있었다.
쿠마 겐코는 형태론적 측면에 치중하지 않으며 제한적인 전통성 개념을 벗어나 전통 사상과 자신의 철학을 하나의 디자인 개념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쿠마 겐코의 이러한 다양한 전통성 구현 과정은 우리에게 전통성의 표현 영역을 넓혀주는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다. 또한 쿠마 켄고의 공간디자인에 나타난 전통성 해석의 방법과 특성을 통하여 과거 식민지 시대, 한국전쟁, 고도의 산업화로 단절됐던 전통문화와의 맥락을 회복하고 고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성 발전 방향에 있어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는 기반 형성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