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본 논문에서 폴 리쾨르의 문화해석을 신학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일컫는다.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로의 전환기를 3가지 과정, '신념의 붕괴, 세계문화의 탄생, 새로운 양극화의 형성'으로 말하기도 한다. 모더니스트들이 '확정성의 원리'를 믿는다면, 포스트모더니스들은 '불확정성의 원리'를 믿는다. 모더니스트들이 '창조, 전체, 종합'에 관심을 갖는다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파괴, 해체, 대립'에 더 관심을 갖는다. 포스트모던 문화의 특징은 진리상실과 절대적인 것의 거부현상을 반영한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 상실을 마치 '해방적인 것처럼' 간주한다. '아무것도 진리가 아니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스스로의 현실창조는 제한 없이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식이다. 끊임없이 회전하는 메타설화가 언어게임의 위험한 정신분열과 테러리즘의 행로를 연다.
오늘의 문화적 위기 앞에, 다시 말해 '포스트모던적 주체성 상실과 가치에 대한 상대주의적 의식' 앞에, 필자는 "폴 리쾨르의 해석학적 문화신학"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리쾨르의 해석학에 나타난 문화적 요소와 연계하면서,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본 그의 '종말론적 문화해석'을 현실비판과 그에 합당한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문화신학은 일종의 해석학적 신학이다. 이를 세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우선 오늘날 종교문화 속에 있는 현실 악의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 해결안을 찾고자할 때, 리쾨르의 상징해석학( 『악의 상징』과 『해석의 갈등』 )은 고통과 불행을 자아내는 '악의 실재' 파악에 도움을 준다. 고대문화의 일상적 삶에 나타난 언어와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는 의식 초월적 체험이 투사된 고백언어를 만난다. 그는 이 근원을 칸트나 프로이트와 달리 성경에서 찾는다. 하이데거는 그 악의 요소들이 무신론, 그리하여 허무주의의 문화를 초래했다고 평한다. 이런 문제점 앞에 리쾨르는 상징해석학을 통해 종교현상학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다양한 문화해석들은 '갈등·대립·전쟁'을 낳기도 한다. 여기서 다양한 방식의 문화해석에 문화상대주의적 논란이 대두되며, 문화해석학의 '정체성'문제가 생긴다. 문화 보편주의는 중세 서구사회가 양산한 유산일 뿐, 인류공동체가 유지해야하는 보편적 가치체계는 아니다.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이론이 되기 위해 문화해석학은 법·철학·종교뿐만 아니라 정치·과학 등 현제 이슈가 되는 해석학의 폭 넓은 교류가 필요하다. 현대문화의 위기는 문화상대주의에 기인한다. 문화 상대주의가 보편주의 틀을 벗어나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만들지만, 또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이런 차제에 리쾨르는 문화상대주의와 문화 보편주의의 선택이 아닌, '종말론적 진리'쪽으로 방향을 연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정신문화가 피폐해지고 자연과학의 발달에 힘입은 물질문화가 왜곡시키는 현대문화를 고발하면서, 리쾨르는 극복 가능성으로 상징문화해석을 제시한다.
다음으로 "행위의 해석학"이 말씀의 신학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히기 위해, 리쾨르는 은유, 이야기, 텍스트 해석학을 중심으로 언어와 행위이론의 관계를 살핀다. 언어활동의 필연적 귀결의 하나는 드러남(manifestation)으로서 진리의 새로운 개념파악이다. 리쾨르는 특히 은유와 이야기를 통해 나타나는 '의미의 혁신과 진리발견'을 중시한다. 그리고 이야기와 시간관계를 연계하여 행위의 해석학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텍스트 해석학은 독서에 적용하는 방법론과 같은 차원에서 이해와 설명의 복합적이고 통합적 순환과정을 거쳐서 텍스트의 의미세계를 찾아내고자 한다. 새로운 세계의 발견은 자아의 변화를 수반한다. 여기서 자기화는 해석의 최종목표이다. 자기화란 독자가 텍스트 앞에서 얻게 되는 자기이해이다. 이는 전체와 부분, 추정과 검증의 해석학적 과정에 독자가 능동적으로 참여해서 새롭게 변형된 자아를 만나는 것이다. 1980년 이후, 그의 텍스트 해석학은 '문화·역사' 그리고 삶 자체를 이해하는 행위의 해석학으로 나아간다. 그는 틸리히처럼 문화를 종교에 국한하지 않고, 문화 영역을 삶의 영역으로 확대한다. 즉 문화는 '인간 삶의 총체적 양식'이다.
마지막으로 실천신학적 문화신학에서 리쾨르는 그리스도교 문화해석에 대한 전망을 사랑과 정의의 변증법과 용서의 문제로 이끌어 나간다. 리쾨르는 다문화 사회 속에 새로운 정체성 정립이 요구되는 오늘날, 가치관의 갈등과 종교적 대립 속에서도 상호 인정은 정체성 정립에 가능한 길을 제시한다. 구체적으로 용서는 역사적 사건이며 인간의 일이라고 그 가능성을 외친다. 그는 종말론적 하느님 나라가 저 세상에만 있지 않고 지상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그 증언이다. 종말론적 하느님 나라는 역사에서 악의 넘침보다 하느님의 보다 큰 은혜의 넘침으로 극복된다는 희망의 여로이다. 리쾨르의 긍정적 해석학은 현대문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비극에 비해, 현대문화를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문화신학의 고유성을 열도록, 존재욕망과 실존노력을 바람직한 삶에 대한 태도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부정적 시선이나 환원주의로 바라보는 악의 세력과 투쟁 중에 있는 오늘날 문화의 장은 바로 십자가가 하느님 나라의 문화로 향해 펼치는 희망의 표징이 된다. 문화신학은 종말론적 관점에서 하느님 나라건설에 이바지하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문화를 배척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화 안에서 하느님의 형상을 드러내시고, 태초의 창조 때 발하신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씀을 들을 수 있게 인간의 오류를 수정하고 개척하시는 분으로 드러난다. 하느님의 선물(하느님의 자기주심: 요한 3, 15-16)은 구원의 길을 여는 희망찬 '생명문화'의 신비를 열어준다. 그 분을 통해 종말론적 진리인 하느님 나라가 개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