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30여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그날의 기억은 상처와 아픔, 슬픔의 모습으로 광주 지역사회에 나타나고 있다. 본 연구는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이룩한 가장 결정적인 항쟁이었던 5·18이 왜 아직도 지역사회에서 무겁고 어두운 이미지로 남아 있는 지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출발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5·18이 한 세대를 넘어가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초기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정서적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원인을 "옛 도청 별관"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근본적으로 문화적 기억이 되지 못하는 원인을 도출하고자 하였다.
기존에 5·18과 관련된 연구들은 주로 정치·사회적 접근을 통한 진상규명 및 과거청산과 관련되어 있으며, 문화·예술적 경험을 통한 접근 또한 문학·미술·음악·공연 등 각 분야에서 단순한 재현에 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5·18의 정신적 가치를 어떻게 계승하고 확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관심보다는 사건의 재현이나 정신적 고통 등에 집중하는 데 그치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우리 사회에서 5·18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문화적 기억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모리스 알바쉬(Maurice Halbwachs)의 '집단기억' 이론을 통해 5·18의 집단기억의 특성을 고찰하고, 이어 아스만 부부(J.Assmann, A. Assmann)의 '문화적 기억' 이론을 통해 5·18이 문화적 기억으로 자리 잡기 위한 필요조건을 도출하는 데 활용하고자 하였다.
"옛 도청 별관"담론은 2008년 6월부터 2010년 12월까지의 기간 동안에 5·18사적지 중 하나인 옛 전남 도청의 별관부분의 '철거'와 '보존'을 두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추진단'과 '5월 단체'사이에 형성된 담론으로 지역사회에서 가장 큰 화두였다. 본 연구는 각각 발표한 보도 자료와 성명서를 기초로 세 가지 층위인 텍스트, 매체활용, 대안제시로 분류하여 '문화적 기억'에 대한 입장 차이를 도출함으로써 이들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가치의 차이가 '역사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로 다르게 나타남을 밝힐 수 있었다.
이러한 가치에 대한 인식적 차이를 토대로 문화적 기억화의 장애요소를 고찰할 필요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크게 세 가지로 원인을 분석하였다. 첫 번째는 이분법적 구도에 기반한 언론보도에 의해 담론 양상이 형성되면서 근본적 가치에 대한 접근을 차단한 점이며, 두 번째는 5·18 트라우마에 대한 국가적 대책이 없는 채로 30여년이 흘러가면서 여전히 과거의 시간에 집중하는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집단 망탈리테가 감정적 대응방식을 지속적으로 촉발시키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별관 담론이 2년여를 끌면서도 국가차원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지역담론에 머물렀다는 점 등을 5·18이 문화적 기억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으로 보았다.
5·18이 우리의 삶속에 일상화되고, 문화화됨으로써 현재적 의미를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장애요소를 극복하고, 다시 그 본질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단계적 접근을 통해 5·18이 고통의 사건이 아닌 진정한 문화적 기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