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일본의 전근대시대에는 공통적으로 도성│都城│이라는 도시형식이 나타났다. 도성은 왕조의 정통성을 증명하고 권력의 당위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건설되었다. 도성은 정치적 아이콘│Political Diagram│이었던 것이다. 도성은 정치적 목적을 가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건축적 장치가 되었으며, 이런 이유로 도성건축에는 다른 도시보다 높은 수준의 상징성을 표현할 수 있는 계획안이 요구되었다.
특히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는 평면형태, 왕궁과 종묘·사직 등 주요 시설물의 배치 등을 기술하고 있어 도성을 구현하기 위한 형식적 근거로 작용하였으며, 왕궁으로부터 종묘·사직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구성을 바탕으로 도성의 도로체계와 도시조직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도시 형태와 도시구조 사이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공간의 성격에 관한 관심은 역사 속의 도시를 탐구하는 작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본 연구는 도성의 공간구조와 배치문법에서 나타나는 공간적 특성에 대한 관심으로 출발하여, ①도성계획들이 『주례·고공기』와 동형│同型│인지 이형│異型│인지를 판단하기 위하여 원형│原型·archetype│ 다이어그램으로서 『주례·고공기』를 재해석하고, ② 이 원형 다이어그램을 바탕으로 한국·중국·일본의 도성계획에 드러나는 공간적 특징을 분석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도성에서 공간의 기본 구조가 결정되는 성곽과 왕궁, 종묘·사직 사이에서 발생하는 공간적 관계에서 드러나는 계획방법상의 차이를 파악하여 도성의 공간특성을 규명하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공간적 관계를 분석하는 연구는 도성공간의 배치적 문법을 파악하는 작업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주례·고공기』는 형태적으로 사각형 평면형태의 격자도시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각형은 만다라로부터 기원하는 고대인들의 우주론적 상징체계로 부터 출발한 것이며, 또한 격자형 도시구조는 통제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계획적 특징 때문에 인해 군사적, 정치적 의도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사각형 평면의 격자도시'는 정복왕조의 정치적 목적과 부합되는 형식이 되었다. 따라서 『주례·고공기』의 상징적 측면이나 형태적 측면만으로는 도성계획과의 접점을 찾기 어렵다고 할 수 있으며. 도성의 공간 구조와 계획적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례·고공기』에 서술된 내용 이면의 보편적인 공간 질서를 파악하려는 접근이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주례·고공기』의 원형 다이어그램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첫째, 도성에 중심을 만들고자 하였다. 도성은 국토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으로 중심의 위치에 따라 도성의 입지와 영역이 결정된다. 도성의 중심이며 가장 위계가 높은 시설은 왕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왕궁은 도성의 중심에 배치되어야 한다. 따라서 성벽을 기준으로 왕궁의 위치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왕궁을 중심으로 도성의 영역을 파악하여야 한다.
둘째, 도성의 영역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도성을 주변과 분리하기 위한 행위이며, 이로 인해 도성은 주변보다 높은 위계를 갖는 공간이 된다. 성곽은 도성의 영역을 구축하는 건축적 장치이며, 대표적인 평면 형태는 사각형이다. 그러나 지형에 의해 도성의 내외부가 구분되어 영역이 결정되기도 한다.
셋째, 도성 내부의 공간 사이의 연결 관계를 만든다. 이것은 도로체계를 만드는 동시에 내부의 블록을 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도성의 공간을 조직하고 연결하는 방법이다. 도성 내 주요시설 사이의 연결 관계는 도성 내부의 공간적 특질을 결정한다. 특히 왕궁과 종묘·사직의 연결 관계는 도성의 중심도로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것은 『주례·고공기』의 원형│原型·arche-type│ 다이어그램으로 도성계획을 위한 최소한의 틀로서, 해석 가능한 텍스트로 이해되어야 한다.
실제의 계획에서, 중국의 도성에서는 도성 평면의 형태적 중심과 실질적인 중심인 왕궁의 위치를 일치시키려는 방향으로 도성계획이 발전하였으며, 한국의 도성은 지형의 중심에 왕궁을 배치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사각형의 평면형태와 격자형 공간구조를 갖는 도성에서는 장소의 위치가 강조되는 위치에 주요 시설이 입지한 특성을 보인다. 따라서 대칭적 공간구성과 축선의 연결 관계를 갖는다. 반면 지형적 논리에 의해 입지한 도성은 주요한 시설의 입지 역시 지형 해석이 중시되어 각각의 절대적 위치가 강조되어 선형으로 연결되는 공간적 특성을 보인다.
『주례·고공기』는 동북아시아에서 공유하고 있던 도성에 관한 개념으로 역사 속에 등장하였던 도성들은 『주례·고공기』와의 차이점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점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당시의 계획의 주체들이 가지고 있던 문화적 배경이 도성계획에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례·고공기』를 중화주의적 상징체계로만 이해해서는 도성의 배치질서가 가지고 있는 공간적 특성을 분석하는데 한계가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주례·고공기』를 보편적인 공간 개념 속에서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의 도성 공간을 분석한 것으로, 도성의 배치적 문법과 공간구조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