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범죄라는 해악과 정신장애라는 이상성에 대해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고 살아왔고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다양한 제도를 양산하고 보완하여 왔다. 현대 사회는 정보화의 진전으로 물리적·경제적 환경 요소들이 비약적으로 발전·변경·소멸되고 있고 급변하는 사회적 변화에 적응이 곤란한 자들이 소외됨으로써 사회병리 현상으로 정신장애범죄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정신장애자의 범죄는 비정상적 범행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곤란한 특성을 가져 다양한 언론매체를 통해 관심과 두려움이 증대되고 있다.
형사사법체계에서는 정신장애범죄자의 책임능력을 판단하여 형벌을 조각하거나 감경하여 처우를 결정한다. 이러한 처우를 결정하기 이전 단계인 형사책임능력을 판단하는 과정은 중요하게 고려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정신의학은 증상론을 기반으로 발전하였기 때문에 명확한 병의 원인이 규명된 신체적 질병과는 근본적인 접근의 차이가 있다. 따라서 정신장애자를 판단하는데 법학, 정신의학, 심리학 전문가의 협력이 필수적이고 궁극적인 법률적 가치 판단도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하여 본 논문에서는 다양한 이론적 검토를 병행하고, 1951년부터 2009년까지 입수 가능한 판례를 중심으로 형사책임능력에 대해 법률적으로 판단한 자료를 분석하여 실증적인 논의를 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형사책임능력판단제도와 관련된 제언과 입법론적 제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형법은 생물학적 요소와 심리학적 요소의 양쪽을 혼용하는 혼합적 방법으로 규정되어 있고, 형법 제10조의 제1항과 제2항은 책임무능력자와 한정책임능력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거나 형을 필요적으로 감경하도록 하고 있다. ① 생물학적 요소인 심신장애는 정신의학의 발전에 따른 정신장애 개념의 수정 가능성을 고려하여 일반조항의 형식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에 해석을 통해 그 유형과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 법률의 해석론을 통해 그 개념을 파악하기 때문에 관점의 차이에 따라 정신장애의 범주가 중복되게 분류되거나 누락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대법원도 일정한 유형을 구분하기 보다는 정신의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을 인용하고 있어 이론과 그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② 심리학적 요소의 판단에 있어서도 법원은 사물의 변별능력과 의사를 결정할 능력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일관성 있게 판시하고 있지 않다.
또한 법원은 ① 정신감정의 필요성 여부에 대해서도 ‘반드시 전문가의 감정만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자의적인 형사책임능력의 판단이 우려되는 경우가 있다. 또한 ② 정신감정의 범위에 있어서 포괄적인 생물학적 요소를 요구하거나, 생물학적 요소에 대한 구체적으로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규범적 요소에 대하여 법률적 의견까지 요구하는 등 판례의 태도는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③ 정신감정 결과에 대한 기속력도 ‘정신감정의 여부와 상관없이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한다’하여 법률적 가치판단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의 정신장애 범주별 책임능력을 판단한 경우를 분석하면 물질관련장애 64건, 정신장애의 진단명이 미기재된 경우 49건, 2개 이상의 장애 27건, 정신분열증 27건의 순으로 심리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물질 관련 장애의 경우 심신장애 배척 29건으로 책임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향이 있으며, 정신분열증의 경우 심신상실 인정 7건, 심신미약 인정 9건으로 정신장애로 인한 책임무능력자 또는 한정책임능력자로 인정되는 것이 다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판례 분석을 통해 본 법원의 책임능력 판단은 혼합적 방법에 따른 단계적으로 판단하는데 태도를 찾아보기 어렵고, 각 개별적 사안마다 판단의 기준이 다른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법원은 심신장애를 생물학적 요소로 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책임무능력자 또는 한정책임능력자와 같은 의미로 보아 더욱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이 형사책임능력을 판단하는데 있어서도 곤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따라서 전문가인 법관과 감정인이 일반인인 배심원이 이해하기 쉽게 재판과정과 감정결과에 관해 설명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러한 법원의 책임능력판단에 대하여 ① 법관은 ‘심신장애자와 심신장애’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하여야 한다. ② 심신장애와 정신장애의 개념적 동일성을 유지하여야 한다. ③ 심리적 요소에 대한 판단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여야 한다. 또한 형사정신감정에 있어서 ① 당사자의 주장 또는 신청시에는 소송지연의 목적이 없는 경우 필요적 정신감정을 인정하여야 한다. ② 정신감정인은 전문가 영역에 근거한 감정인의 의견제시를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③ 정신감정 연구를 위한 독립된 기구를 설립하고 기소전 간이감정제도를 도입할 필요성도 있다. 그리고 국민참여재판에서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배심원이 형사책임능력의 구조를 이해하도록 구체적인 자료에 의한 설명을 하는 등 전문가의 배려가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 형법 제10조의 규정은 표제어에는 ‘심신장애자’라고 현재의 규정을 유지하되 생물학적 요소인 ‘심신장애’는 ‘정신장애’로 개정하여 정신의학적 개념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정신감정에 대하여도 인간의 정신상태를 다룬다는 특수성과 전문지식이 요한다는 전문성을 고려하여 정신장애가 의심스럽거나 소송지연의 목적이 명백하게 없는 당사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에는 필요적으로 정신감정을 시행하고 정신감정의 결과에 의혹이 있는 경우에는 재감정을 하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
형사책임능력을 판단하는 목적은 행위자에게 가해지는 비난가능성을 판단하여 책임주의원칙을 보장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의 두려움을 제도적으로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범죄에 대한 응보와 예방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형사책임능력을 판단하는 과정은 법익박탈이라는 형벌 부과의 문제와 연계되기 때문에 중요하기도 하고 결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따라서 정신의학과 심리학 그리고 법학의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통해 형사책임능력 판단에 있어서 정의의 실현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