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사이건 집단사이건 인간이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 역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좀더 긍정적인 미래 전망을 갖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국가 단위부터 민간 단위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위에서 역사를 통해 무엇을 읽어내고 이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지자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90년대 중반 이후,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이 개발가능한 문화적 자원으로 인식되면서 역사 '기념'의 지형도는 훨씬 더 복잡해지고 있다. 지역의 역사문화자원과 경제적 효과를 연계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상당수 지자체들이 '체험'이라는 유인 요소를 동원해 역사를 엔터테인먼트 대상으로 전락시키면서 역사를 왜 기억해야 하는가라는 당위명제는 물론 문화적 인프라로서 역사문화자원의 현재적 가능성을 묻는 지반을 흔들리게 하고 있다.
본고는 역사를 기념하는 방식에 대한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전제로, 역사문화자원이 어떻게 하면 그 본원적 가치를 상실하지 않으면서 문화적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인지를 타진하였다. 연구 대상은 공간의 형태로 드러나는 국내 역사문화자원 기념관을 중심으로 하였다.
역사문화자원 기념관이 본원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일 것이다. 이는 기념관이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가 관람자의 공간 체험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국 공간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와 각각의 공간에서 어떻게 체험하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집약된다.
본고는 일방적인 정보전달보다는 공간과 관람자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나 역사적 사실과 관람자간의 공통된 경험지반이 형성될 수 있다는 인식 하에 공간조직과 체험형식을 중심으로 새로운 방식의 기념관 구성을 제안하였다. 이를 위해 인간의 몸을 중심으로 하는 '경험의 구조'에 공통적 맥락을 두며 '체험'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는 존 듀이(J. Dewey),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그리고 인지과학을 바탕에 두고 있는 체험주의(experientialism) 이론을 기반으로 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역사문화자원이 공간의 형태로 드러나는 기념관이 갖추어야 할 요소로 '공감', '감각', 그리고 공간의 테마화를 들었다. 구체적으로 말해 정신적 이념과 같은 추상화된 역사문화자원을 유물과 마찬가지로 전시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기존의 관점이 아닌 '공감 체험을 통한 교육성', 단순한 사실들을 사실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의미 창출의 중심을 관람자의 경험에 두는 '감각 경험을 통한 의미의 재현성', 기념관의 주된 기능인 전시와 테마파크의 특성을 결합한 테마파크형 뮤지엄을 지향하는 '몰입환경에서 공간의 체험성' 등이 그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위의 세 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발발한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하나의 특별한 사건을 주제로 택하고, 이에 관한 체험관 기획을 시도하였다. 이미 건립된 5·18민중항쟁 관련 기념공간에 누락되어 있는 '관람자의 체험'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앞으로 구 전남도청 부지에 생겨날 5·18민중항쟁 관련 기념공간의 지향점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공간 기획에서는 역사문화자원이 갖춰야 할 사건의 교육성과 재현성을 발현할 수 있는 도구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기관의 적극 활용과 이를 통한 '공감영역'의 형성에 두고 있으므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테마파크적 요소와 감각화를 이용해 현실과 가상을 잇는 인터랙티브 환경을 배경으로 기념공간과 참여자와의 상호작용에 의한 체험이 가능하도록 공간의 유형을 설정하였다. 관람자 중심의 지능적 인터랙티브 환경과 역사문화자원의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공간 전개는 참여자의 몰입을 유도할 수 있으며 체험의 프로세스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체험주의 이론의 '은유' 구조를 토대로 하여, 광주민주화운동의 과정을 두 가지의 상반된 「엄격한 아버지」 모형과 「자애로운 부모」 모형을 들어 서로 대립을 이루는 축을 설명하고 발발 단계에서 폭력적 국가에 의하여 과잉진압을 당하던 시민이 이후 5·18민중항쟁이 갖는 가장 큰 의의인 자치질서를 확립하고 대동정신의 실현으로 옮기기까지의 과정을 담는다. 폭력적 외부자극에 의해 유발된 공포-수치의 감정과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한 자발적인 감정인 억압-분노, 그리고 적극적으로 품게 되는 '의지'의 감정요소로의 확장을 공간의 내용으로 확대하였다. 감정요소와 감각을 동원한 체험관의 기획 의도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권력은 무엇을 매개로 하여, 어떠한 인권침해 행위를 하고 있으며, 이는 시민 내부에서 어떤 감정을 촉발시키고 있는가"를 드러내고자 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