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말 엘리자베스 종교개혁의 완성기에 제기된 개혁논쟁은 영국교회의 신학 뿐 아니라 17세기 청교도 혁명, 시민혁명에 이르는 영국의 정치 경제적 개혁의 성격에도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엘리자베스 여왕 후기에 활동했던 리처드 후커는 이러한 논쟁에서 등장한 영국 종교개혁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수립한 ‘성공회 신학 아버지’라고 불린다. 후커의 신학은 19세기 옥스퍼드 운동과정에서 새롭게 조명되면서 그의 신학이 가지는 중용과 균형의 정신이 성공회 신학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성공회 신학이 가지고 있는 중용의 정신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것이 단지 로마 가톨릭과 청교도의 중간 입장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후커는 영국종교개혁의 성격을 당파적 성격에 두지 않고 당시 영국 사회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개혁으로 규정하였다.
후커 신학에서 공공성은 그의 이성에 대한 강조에서 나타난다. 그의 이성론은 중세 스콜라주의적 이성과 신앙의 이론을 보다 근대적 체계로 준비시키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이성론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성의 사회적 성격, 즉 공공적 이성에 대한 강조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공성의 강조로 인해 후커는 시민혁명기의 철학자 존 로크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는 신학자가 된다.
종교개혁 시기의 후커 신학에서 공공성이란 신자유주의에 대한 시민사회적 대응이라는 최근의 공공성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후커 시대에도 시민의 세속적 정치가 백성들의 동의라는 이성적 활동과 참여에서 형성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정치적 사회의 한 영역이 교회라고 봄으로써 후커는 교회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그는 교회의 공공성의 제도적 성격을 강조하여 영국교회의 공도문, 주교제도, 국왕수장권은 로마 가톨릭의 교황주의적 제도와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또 제네바의 제도를 추종하는 장로주의적 청교도들의 교회제도는 영국의 공공성을 위협하는 분열주의적 위험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므로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교회가 정착시킨 국교회의 제도는 공공성을 담보하는 제도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후커가 강조한 교회의 공공성은 하느님 나라의 정치적 성격을 밝힌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신비체로서의 불가시적 교회를 이 땅의 정치적 영역에서 가시적 제도로 수립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후커는 교회를 정치적 사회의 하나로 주장하였다. 후커에 의하면 교회는 세속의 정치적 영역에서 가시적 제도로서 존재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사적 경쟁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후커의 신학 사상에서 나타나는 교회의 공공성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공공성은 신앙의 사적 성격과 정면으로 부딪히는데 이것은 교회가 바로 의사소통의 공동체임을 말해준다. 교회는 사적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소통적 성격을 보여주고 거기서 사적 이익이 가지는 우상숭배적 탐욕을 억제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 시대에 우리가 후커에게서 배워야 할 공공성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