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매우 괄목할만한 속도로 진전되었다. 1999년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되어 법제화된 정리해고제는 그 논란의 과정에 평생직장의 개념이 급격하게 퇴조되는 공감대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사회적인 변화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는 급속도로 증가하는데 통계청은 1999년 3월 처음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이상이 비정규직(고용계약기간이 1년 미만인 노동자)라고 발표하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과연 비정규직 노동자의 폭발적인 확대가 기업 내에서 노동자들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민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시기가 되었다.
한국에서 비정규직은 급속도로 증가하는데 특히 심각한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노동력의 ‘이동’이 아니라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대체되는 노동력의 ‘대체’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35시간미만 일하는 노동자의 수가 11%에 불과한 것은 비정규직노동자 대부분이 정규직 노동자가 할 일을 ‘대체’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이유가 대체로 수행하는 업무의 차이, 비용의 절약, 그리고 고용의 유연성이라고 가정하고 이에 대해 두 개의 전형적인 사업장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종업원의 태도를 분석하였다. 즉, 비정규직이 존재하고 있으나, 그들이 위 세 가지 점에서 정규직과 완전히 동일한 대우를 받는 사업장(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완전히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사업장(시티은행)을 비교함으로써 이러한 조건들이 해당 사업장의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태도를 분석하였다.
건강보험심사 평가원의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는 제도의 도입이 2년 남짓에 불과함에 따라 나이나 경력은 어리지만 수행하는 업무는 완전히 정규직 노동자와 동일한 심사평가라는 전문적인 업무였다. 나이나 경력에 따른 보수의 차이는 있었으나 정규직과 완전히 동일한 호봉제에 있었고, 기타 복리후생 역시 정규직과 동일한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고용 안정성의 문제는 지난 200년에 체결한 노동조합과의 합의서에 의해 완전하게 보장됨으로써 사실상 정규직과 마찬가지의 상황에 있다. 반면 시티은행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력이 정규직에 못지않을 정도로 제도 도입이 오래되었고 수행하는 업무는 정규직 노동자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보수를 비롯한 복리후생도 정규직 노동자와 뚜렷한 차이가 있었고 고용 역시 일정한 시기가 되면 직장을 떠나야 하는 조건에 놓여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업장의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를 분석하였는데, 직장의 만족도는 시티은행의 정규직 노동자 보다 심사평가원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오히려 더 높고, 일에 대한 자부심은 시티은행의 정규직 노동자와 심사평가원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비슷하게 높게 나타났다. 비정규직제도가 회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에서 두 사업장은 모두 가장 높은 응답을 보인 3항목이 모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시티은행의 경우 비정규직과 뚜렷하게 다른 차이를 보이며 핵심 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 노동자의 60%가 ‘비정규직의 이직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가장 높은 영향으로 응답함으로써 비정규직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구됨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으로의 전환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한 결과, 전환하면 보수에 비해 더 열심히 할 것이라는 응답을 시티은행 정규직 노동자가 가장 높게(심사평가원 정규직보다 무려 26.8%p 높게) 하였다. 정규직만을 대상으로 ‘전환하면 내일의 생산성이 향상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서도 시티은행 정규직의 76.2%가 그렇다고 응답함으로써 대안이 무엇인지를 암시하였다. 전환의 절차에 대해서는 입사이후 경과한 경력과 업무능력 관련시험을 적절히 조화하는 방식을 사용하면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분석의 결과를 토대로 개별기업차원에서 비정규직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전제해야할 사항을 정리하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동료의식과 그것을 토대로 형성되는 상호간의 업무상 협력관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 차별대우를 통해 비용을 줄이는 것으로 기대하는 효과가 정규직 노동자로부터도 동의 받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함으로써 애초에 결코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는 업무협조의 파트너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