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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저자사항
東國史略. 冊1-4 / 權 近(朝鮮) 撰 ; 玄采 譯述 인기도
발행사항
漢城 : 普成館, 光武10[1906]
청구기호
古 951 ㄱ435ㄷ
자료실
[서울관] 귀중서고(1층 대출대)
판사항
新鉛活字本
형태사항
4卷 4冊 : 四周雙邊, 半郭 18.1 × 12.3 cm, 無界, 11行23字, 註雙行, 無魚尾 ; 25.6 x 17.8 cm
제어번호
OLDP1198042033
주기사항
裝幀: 線裝
刊記: 光武十年(1906)六月十日印刷
印影: 普成館書籍發行所印
국한문혼용본임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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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국사략(東國史略)』은 광무 10년(1906) 6월 10일, 현채(玄采, 1886〜1925)가 역술(譯述) 한 대한제국 최초의 근대 역사 교과서이다. 단군조선에서 구한말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중요한 주제들을 한말(韓末)의 계몽적 시각에서 정리한 통사(通史)이다. 조선 전기부터 『동국사략』이라고 불리는 여러 문헌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중에서 조선의 태종(太宗) 재위기에 권근(權近, 1352〜1409) 등이 찬술한 판본이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며 단군에서 신라말까지 서술하였다. 현채의 『동국사략』은 일본의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가 저술한 『조선사(朝鮮史, 1892)』, 『조선근세사(朝鮮近世史, 1901)』를 조선의 입장으로 번역하고 추가 서술한 것이다. 본서는 전 4권 4책으로 이루어졌고, 신연활자본(新鉛活字本)으로 한성부(漢城府)의 전동(磚洞: 지금의 종로구 수송동)에 있는 보성관(普成館)에서 발행되었다. 인쇄는 회동(會洞: 지금의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보문관(普文館)에서 이루어졌고 그 이듬해 1907년에는 재판(再版)이 발행되었고, 1908년에는 3판이 발행되었다.

2. 저자

조선 전기의 『동국사략』찬자 권근(權近, 1352〜1409)은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초명은 권진(權晉), 자는 가원(可遠)·사숙(思叔), 호는 양촌(陽村)·소오자(小烏子)이다. 권부(權溥, 1262∼1346)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권고(權皐, 1294∼1379), 아버지는 검교정승(檢校政丞) 권희(權僖, 1319∼1405)이다. 고려 공민왕 17년(1368) 성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급제해 춘추관검열(春秋館檢閱),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예문관응교(藝文館應敎) 등을 역임했다. 새로이 조선 왕조에 출사(出仕)하여 예문관대학사(藝文館大學士), 중추원사(中樞院事) 등을 지냈다. 이후 태조 3년(1396) 이른바 표전문제(表箋問題)로 명나라에 대하여 외교적 사명을 완수하고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으로 화산군(花山君)에 봉군되고, 정종 때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대사헌(大司憲) 등을 역임하였다. 태종 2년(1402) 왕명을 받아 하륜(河崙) 등과 『동국사략(東國史略)』을 편찬하였다.

본서의 역술자(譯述者) 현채(玄采, 1856∼1925)는 대한제국기 평강(平康) 군수, 기호흥학회(畿湖興學會) 활동을 역임한 관료이며 사학자이다. 본관은 천녕(川寧)이며 자는 백수(白受)이다. 사역원정(司譯院正) 현재긍(玄在兢, 1783∼?)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직장(直長) 헌강(玄鋼, 1808∼?), 아버지는 사역원참봉(司譯院參奉) 현제만(玄濟萬)이다.

현채는 1873년 식년시 역과(譯科)의 한학(漢學)에 3위로 급제했다. 1892년 부산항 감리서(監理署) 역학, 번역관이 되었으며, 1894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주사가 되었다. 1895년에는 관립 외국어학교 부교관, 한성사범학교 부교관을 지냈다. 1896년 평강 군수가 되었다가 사직했다. 1899년 학부(學部) 편집국 위원으로 임명되어 1907년까지 학부 주사 및 보좌원으로 근무했다. 학부 재직 때인 1899년 학교용 국사 교과서인 『동국역사(東國歷史)』를 편찬하기도 했다.

번역 원서의 저자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 1854~1923)는 일본의 명치(明治, 1868~1912)와 대정(大正, 1912~1926) 시대의 한학자(漢学者)이자 동양사학자(東洋史学者)이다. 치바현(千葉県) 출신이며 동경대에서 수학하였다. 자(字)는 아자나(浩卿), 호(號)는 신사이(進斎)이며 동경제국대학교 조교수와 동경교육대학의 전신인 동경고등사범학교 등에서 근무하였다. 대정 5年(大正, 1917) 『周公と其時代』로 학사원은사상(学士院恩賜賞)을 수상하였고 저서로는 『조선사(朝鮮史)』 등이 있다.

본서의 서문(序文)을 쓴 안종화(安種和, 1860∼1924)는 대한제국기, 법부참서(法部參書)와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을 지냈다.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사응(士應), 호는 함재(涵齋)로 홍양(洪陽) 출신, 안기원(安基遠, 1825∼1896)의 아들이다. 개항기로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역사학자이자 계몽운동가, 교육자로 활동하였다. 저서로는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를 비롯한 역사서와 을사늑약 이후 『초등본국역사(初等本國歷史)』와 같은 다수의 교과서를 편찬하였다.

3. 형태적 가치 및 특징

양지(洋紙)에 신연활자(新鉛活字)로 인쇄되었다. 표지서명(表紙書名)은 단변(單邊)의 테두리에 ‘東國史略’이며 해서(楷書) 표지서명 아래에 ‘一, 二, 三∼’ 책차(冊次)가 있다. 장정 형태는 사침안정(四針眼訂)의 선장본(線裝本)이며 ‘卍’자 능화문(菱花紋)에 제일책(第一冊) 표지 아래 서배(書背)에는 총책수(總冊數)가 표시되어 있다. 본문의 서미(書眉)에 소자(小字)로 단락의 제목을 표기하였다. 발간 시기는 권수(卷首)에 현채 본인의 자서(自序)와 안종화의 서문(序文), 권말(卷末)의 판권지(版權紙) 간기(刊記)를 통하여 1910년에 발간된 것을 알 수 있다. 판권(版權)란에 보성관서적발행소인(普成館書籍發行所印)이 날인되어 있다. 전체적인 내용 체계는 단군조선→기자조선→삼한→삼국→통일신라→태봉․후백제․발해→고려→조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3권까지 각 권말에 물산약표(物産略表), 역대일람(歷代一覽), 역대왕도표(歷代王都表), 본조일람(本朝一覽)을 첨부하였다.

본서는 일본의 한학자(漢學者)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가 저술한 『조선사(朝鮮史, 1892)』, 『조선근세사(朝鮮近世史, 1901)』를 한국의 입장으로 번역하고 추가 서술한 것이다. 현채가 하야시의 책을 역술했으므로 목차는 대체로 유사하지만, 편찬의 동기나 실제 본문 내용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선 본문 내용에서도 현채는 하야시의 저술을 그대로 번역하지 않았다. 하야시가 한국사의 시작을 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설정하였으나 현채는 단군조선을 역사의 시초로 두고 위만조선에 대해서는 단 두 줄로 설명하고 통사체계를 단군조선→기자조선→삼한→삼국→통일신라→태봉․후백제․발해→고려→조선으로 구성하였다.

본서의 내용을 제목부터 살펴보면 현채는 초판(初版) 제목을 ‘동국사략(東國史略)’으로 했지만, 재판(再版)부터는 ‘중등교과 동국사략(中等敎科 東國史略)’으로 ‘중등교과(中等敎科)’라는 표현을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그리고 ‘동국사략’의 판본별 특징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서술 내용의 변화이다. 현채는 초판부터 하야시의 『조선사』와 『조선 근세사』에서 서술 대상 시기가 아니었던 ‘갑오(甲午) 후 10년 기사’ 항목을 추가하여 역술의 의미를 살리고 있다. 재판에서는 거기에 덧붙여 ‘을사신조약(乙巳新條約)’, ‘해아사건급선양(海牙事件及禪讓)’ 그리고 ‘결론’을 추가하였다. 또 3판에서는 ‘융희시사(隆熙時事)’를 덧붙여 재판(再版)과 3판이 출간되기 직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재판(再版)에서는 ‘해아사건급선양’ 항목에서 융희 원년 8월 2일부터 10월까지의 내용은 이미 기술하고 있다. 3판에서 11월부터 1908년 4월까지의 역사를 덧붙였다. 그리고 융희 원년 8월부터의 내용에 ‘융희시사’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런데 3판은 같은 판임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동국사략’은 획기적이고 근대적인 서술방법(新史體)을 도입한 대한제국 최초의 근대 역사 교과서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연구자의 다수는 일본인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가 쓴 ‘조선사’와 ‘조선근세사’의 번역서로 인식하여 한국 근대역사학의 선구적 위치를 부여하기를 꺼려 왔다. 그러나 “체제 면에서는 근대적 방법을 도입해, 영역별로 분류하고 주제별로 분석하는 발전적 형식을 취하고 있고, 고대사 부분에서 단군 관련 서술 등 일부 부분에서 민족적인 서술로 수정하였지만, 전반적으로 식민사학에 본격적으로 함몰된 책이라 평가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동국사략’에 대한 또 다른 평가가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윤선태는 그의 연구에서 현채가 갑오∼광무개혁 정권에 대하여 하야시의 ‘조선사’ 체계를 ‘국사’로 수용하고 청으로부터 독립한 근대조선에서 ‘국민(國民)’이라는 개념을 창출하려 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조선사’를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하야시가 강조한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배제하였다. 이것은 청만(淸滿)이 아니라 일본까지도 조선 민족의 타자로 의식하는 ‘국사’의 확립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평가하였다. 도면회의 논문에서도 ‘국민’의 양성과 역사교육, 정통론적 통사체계의 확립 양상을 두고 근대역사학의 주요한 지표로 인식했다.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현채의 ‘동국사략’을 한국인이 쓴 최초의 근대적 통사라고 평가하였다. (해제: 홍원태, 감수: 옥영정)

4. 참고자료

李信澈, 대한제국기 역사교과서 편찬과 근대역사학 : 『동국사략』(현채)의 당대사 서술을 통한 ‘국민 만들기’를 중심으로, 歷史敎育, 126, 2013, pp. 115〜148.

도면회, 한국 근대 역사학의 방법론적 기원, 한국문화연구, 36, 2019, pp. 7〜34.

한국 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http://people.aks.ac.kr/ (접속일. 2023. 9. 10)

디지털 장서각. http://jsg.aks.ac.kr/ (접속일. 2023. 9. 10)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 (접속일. 2023. 9. 10)

コトバンク. https://kotobank.jp/ (접속일. 2023.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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