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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율옹유고(栗翁遺稿)』는 조선 중기의 학자인 송징의 시문집으로, 1826년(純祖 26)에 송징의 6대손인 송재일(宋在一)과 송이신(宋以新)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송징(宋徵, 1564∼1643)의 본관은 신평(新平), 자(字)는 신지(信之), 호(號)는 율옹(栗翁)이다. 아버지는 증공조참의(贈工曹參議) 송문절(宋文節)이다. 송정순(宋庭筍)에게 수학(受學)하였으며, 정철(鄭澈)과는 망년지우(忘年之友)로 가까이 지냈다. 1591년(宣祖 24) 정철이 파출(罷黜)되었을 때 신구소(伸救疏)를 올렸다가 연좌되어 10년 정거령(停擧令)을 받았다. 1612년(光海君 4)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했는데, 당시 이이첨(李爾瞻)이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자 성균관 생도로 항소(抗疏)를 올렸다. 1624년(仁祖 2)에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키자 동지들과 함께 의병을 모아 근왕(勤王)하려 했으나, 이미 난이 평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해산하였다. 1636년(仁祖 14) 후금(後金)의 사신인 용추(龍酋)를 참수할 것을 청하는 「복합상소(伏閤上疏)」를 다른 선비들과 함께 올렸다. 고용후(高用厚)가 무고(誣告)를 당하여 투옥되었을 때 상소를 올려 임진왜란때 의병으로 순국한 고경명(高敬命) 삼부자의 충효를 들어 용서해 줄 것을 청하였으나 도리어 무고로 하옥되었다. 이 밖에도 형벌(刑罰) 및 부세(賦稅) 경감과 문교(文敎) 진흥 등에 대한 정책을 건의하여 정책에 반영되기도 했다. 박광일(朴光一)은 그를 일컬어 은산철벽(銀山鐵壁)이란 말로 칭송하기도 했다. 전라남도(全羅南道) 담양군(潭陽郡) 수북면(水北面)의 구산서원(龜山書院)에 배향되었다.
2. 형태적 특징
불분권 1책으로 구성된 선장본(線裝本)으로, 목활자본(木活字本)이다. 표지 서명은 ‘율옹집(栗翁集)’이고, 처음부터 본문 제12판까지는 ‘율옹유고(栗翁遺稿)’를, 제13판부터 끝까지는 ‘율옹집(栗翁集)’을 판심제(版心題)로 했다. 본문은 사주단변(四周單邊)에 10행 20자이며, 주(註)는 소자쌍행(小字雙行)으로 되어 있고, 어미(魚尾)는 처음부터 본문 제14판까지는 상하내향이∼삼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三葉花紋魚尾)이고, 제15판부터 끝까지는 상하내향삼엽화문어미(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이다. 본문의 권수제(卷首題) 부분부터 제1판과 제2판이 누락되어 있다. 처음부터 본문 제12판까지는 ‘권지일(卷之一)’의 권차(卷次)가 있으나, 제13판부터는 권차가 없다. 상어미(上魚尾)의 상단에 본문 내용에 따라 ‘서(序)’, ‘행장(行狀)’, ‘논(論)’ 등의 문체가 인쇄되어 있다. 간행 시기는 서문(序文)과 발문(跋文) 모두 작성 시기를 ‘숭정사병술(崇禎四丙戌)’로 기재하고 있는 것을 통해 1826년임을 알 수 있다.
3. 체제 및 내용
『율옹유고』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총 1책으로, 먼저 「율옹유고목록(栗翁遺稿目錄)」이 있고, 이후 1826년 송치규(宋穉圭)가 쓴 서문, 현손(玄孫)인 송희노(宋羲老)가 쓴 「율옹송공행장(栗翁宋公行狀)」, 논(論) 7편[「왕패보빙견론(王覇報氷堅論)」, 「신명론(申鳴論)」, 「제갈입관론(諸葛入寇論)」, 「숙향불견기해론(叔向不見祈奚論)」, 「허노재진퇴학공자론(許魯齋進退學孔子論)」, 「곽자의궁사극욕론(郭子儀窮奢極欲論」, 「저수량근장손무기물간입무후론(楮遂良勸長孫無忌勿諫立武后論)」], 책(策) 5편[「독자오복지일야운(壽者五福之一也云)」, 「예자천리지절문운(禮者天理之節文云)」, 「대자유야운(大哉儒也云)」, 「생형벌박세렴인정지대목운(省刑罰薄稅歛人政之大目云)」, 「사군자불가불상자기절야운(士君子不可不尙者氣節也云)」], 전책(殿策) 1편[「인사감어하천재응어상즉재위지생필유소소운(人事感於下天災應於上則災譴之生必有所召云)」], 의(疑) 1편[「생원시제(生員試題)」], 부(賦) 1편[「석해촌부(石壕村賦)」], 명륜당상량문(明倫堂上樑文)」 1수, 신원소(伸寃疏) 1장, 시(詩) 18수[오언절구(五言絶句) 4수, 오언율시(五言律詩) 1수, 칠언절구(七言絶句) 11수, 칠언율시(七言律詩) 2수], 「구산사우축문(龜山祠宇祝文)」 1편, 「춘추제향축문(春秋祭享祝文)」 1편 등과 끝에 1826년 이헌승(李憲承)이 쓴 발문과 1825년(純祖 25) 송약(宋爚)이 쓴 「원율묘각상량문(原栗墓閣上樑文)」이 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논에서는 주로 중국고사(中國故事)를 예시로 신의(信義), 충효(忠孝), 은의(恩義), 경중(輕重), 공사(公私), 진퇴(進退), 사치(奢侈) 등 7가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논술하였다. 책에서는 「예자천리지절문운(禮者天理之節文云)」에서 예악(禮樂)의 중요성을 들어 시행할 것을, 「생형벌박세렴인정지대목운(省刑罰薄稅歛人政之大目云)」에서 형벌 및 부세를 경감해야 함을 건의하였다. 「향교명륜당상량문(鄕校明倫堂上樑文)」은 담양향교(潭陽鄕校)의 명륜당(明倫堂)을 준공할 때 지은 글이다. 「고청사신원소(高晴沙伸寃疏)」는 무고로 옥에 갇히게 되었던 고용후를 변호한 상소로, 고용후가 임진왜란 때 순절한 경명(敬命)의 아들이자 인후(因厚), 종후(從厚)의 아우로서 그의 집안이 충효(忠孝)의 집안임을 들어 관용(寬容)을 베풀어 줄 것을 청하였다. 오언절구 중 「모후유폐서궁(母后幽閉西宮)」은 인목대비(仁穆大妃)가 광해군(光海君)에 의해 서궁(西宮)에 유폐된 것에 대해 현재 시대적 상황과 순 임금의 비(妃)인 아황(蛾皇), 여영(女英)을 빗대어 읊은 시이다. 칠언율시 중 「병자강화후제우종루(丙子講和後題于鍾樓)」는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강화를 맺은 것에 대해 분개하는 마음을 드러낸 것으로, 송치규 또한 서문에서 일찍이 이 시를 들어 알고 있었다고 할 만큼 당시에 알려졌던 시로 보인다. 「강화후술회(講和後述懷)」, 「제일(除日)」등의 시도 같은 맥락에서 지어졌다. 그 외의 시들은 대개 누군가와 송별하며 지은 시가 많다.
4. 특성 및 가치
『율옹유고』는 조선 중기 학자인 송징의 당시 시대상에 대한 시각과 주장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비록 문집의 분량이 소략하여 송징의 생애에서 단편적인 부분만을 엿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비분강개한 모습은 당시의 병자호란 이후의 시대적 상황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책문에서 당시의 시급한 과제와 그에 대한 해결에 대한 관점,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쓴 「향교명륜당상량문」은 담양의 지역문화사를 연구하는 데도 유용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해제: 권석창, 감수: 옥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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